[파이낸셜리뷰] 드디어 우크라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치권의 공식비판이 최초로 시도됐다.
4명의 선출직 구의원이 우크라전쟁을 반역죄로 규정하면서 러시아 하원에 푸틴의 탄핵을 요구했다. 하찮은 찾잔 속의 폭풍에 불과할지 모르는 탄원이지만, 많은 생각을 불러올 수 있는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전쟁으로 인한 무의미한 살상, 세계경제의 고통과 일상 삶의 차질은 러시아 안팍에서 비난을 면키 어렵다. 크레믈린이 20세기 초 볼쉐비키혁명이라는 역사의 환상(幻想地)을 21세기 버전으로 만들어 내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면 20여 년 전, 소련 당대 최고의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당 중앙위원인 알렉산드르 치코프. 그는 마르크시즘에 대해“아마도 인류 역사상 그토록 과감한 과거에의 질타, 그토록 극단적인 미래에의 요구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그토록 순수한 미래의 모순해소를 약속하진 못했다.”고 혁명의 역사적 필연을 극찬했었다. 그런데, 74년 만에 소련에서 혁명도, 제국도, 꿈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르크시즘의 뚝이 무너지는 순간, 1989. 1. <뉴욕타임즈>의 사설은“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가장 길고도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라고 최후 진단을 내렸다. 항변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명 판결이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그리고 수많은 헤겔류의 사변가들과 혁명의 사도들도 반론이 불가한 재판이다. 돌이켜 보면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혁명의 이름으로 파괴되었던가?
그래서 하늘의 천국을 지상에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에드가 후버 미 FBI 국장은 그의 저서에서“1945년에서 1962년에 이르는 기간에 약 1천만명이 뜻있는 투표를 거부하고 가장 가능한 방법인 그들의 발로 투표하였다. 그들은 걸어서 탈주하였다”고 썼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인간적 고발의 표현인가. 오죽하면, 스탈린의 막내 딸 스베틀리나는 1967년 미국 망명 후“공산주의를 책으로 배우면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공산주의를 몸으로 배우면 반공주의자가 된다.”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을까. 참으로 세월의 역사가 역설(逆說)스럽다.
“푸틴을 탄핵하라”는 최초의 정치권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공산주의 탄핵”을 성공시켰던 두 영웅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이 인류공멸의 제3차 핵세계대전을 막았다. 인류가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얼마 전 타개한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고르바초프와 맞장을 떴던 대서양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 있다. 그는 소련제국의 마지막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는 선한 악역을 자처했다. 잘 생긴 헐리우드 미남 배우 출신이자 독실한 크리스찬이고 1981〜89년까지 미국을 이끈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바로 그다.
그런데, 세기의 대변혁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내부모순이 공산권 자멸의 단초를 제공했지만 이를 가속화시키고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놓은 사람이 레이건이다. 솔로몬 같은 지혜와 다윗 같은 용기와 여호수아 같은 끈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크리스찬의 경건한 눈과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평생 선과 악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가를 성경 속에서 찾아 나선 사람이다. 소련을‘악(惡)의 제국’이라고 몰아 붙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총 한방 쏘지 않고 여리고 성벽을 허물 듯이 무너뜨렸다.
그는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십자군운동”으로 불리어 마땅할“소련 난파작전”의 최고사령관이 됐다. 스스로 말이다.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는 경제, 정치, 군사, 언어, 그리고 도덕적 전략전술을 세우고 밀어 붙였다. 소련에 대한 언어전쟁, 경제전쟁, 군비경쟁전쟁, 도덕전쟁이다. 레이건의 언어 수사학적 공세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폴란드인에게는 강력한 정신적 지원군이 됐다. 폴란드 국민들은 레이건의 응원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도미노식 공산권 붕괴는 그 다음으로 이어졌다.
한편, 소련을 상대로‘별들의 전쟁’을 벌였다. 감당하지 못할 군비경쟁은 소련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전임 대통령들은 평화공존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 무역제재, 수출통제로 소련체제의 숨통을 압박했다. 무엇보다 세계 원유가격을 폭락시켜 소련경제에 치명상을 입힌다는 천재적인 발상을 해냈다. 사우디가 그를 도왔다. 결정적 한방, 소련을 지탱해주던 천연가스와 원유를 차단해 버렸다. 결국 소련은 국고(國庫)를 채울 수도 없게 됐고 그나마 있던 국부(國富)까지도 몽땅 소진해 버렸다. 소련은 마치 골리앗이 무너졌던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레이건은 평화라는 방패를 부여잡고 자유, 인권이라는 창을 들어 소련을 압박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의 소유자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세계의 악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귀함을 누가 유린하고 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레이건의 ‘소련 난파작전’은 고르바초프를 소련 정치무대의 정상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동유럽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았다. 정치다원주의 개혁노선도 도입했다. 레이건 난파작전의 결실이다. 이처럼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만남은 세계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그는 평소 ‘하나님이 예비하신 계획’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에게는 자유와 정의가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2004년, 세계인의 안타까움과 한없는 존경을 받으면서 자신이 섬기는 주님 곁으로 갔다. 그는 93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