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 북한은 마르크스주의를 배신했는가?
어느 시대나 특별한 상황의 정치를 받쳐주는 사상이념 체계는 정교하게 준비되기 마련이다. 북한도 사상혁명을 가치롭게 여겼다. 봉건적 잔재가 남아있고,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라는 조선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식(利殖)은 역설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유산을 떨쳐버리는 사상체계로 자리바꿈해 버렸다. 그것이 이른바 불멸의“주체철학”이다. 러시아혁명의 여명이 밝았을 때, 유물론(唯物論)과 관념론(觀念論)간의 논쟁은 계급투쟁의 철학적 표현이라면서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입장에 설 것을 주문한 사람이 레닌이다. 그런데 북한이 만들어 낸 인간중심의“주체철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교시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이념체계가 아니다. 그들은 관념론의 편에 섰다. 북한은 스스로 계급투쟁의 대열에서 그들 영혼의 뿌리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척했다. 무산자계급의 세계관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신한 것이다. 그 함정에 빠진 탓에 등장한 자력갱생, 독자생존, 우리식대로, 자주노선 등은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켰으며 지금의 현실적 어려움을 자초했다. 오죽했으면 1983년 12. 9.자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赤旗)가 주체사상의 인간중심론은 비과학적이며 반동적인 관념론이라면서, 주체사상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두 번 죽었다고까지 힐란했을까. 같은 동방에서 마르크스주의“형제 당”이 무색해졌다. 북한은 언필칭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물론에 입각한 세계관을 조선의 실정에 접목시켜 유일사상체계로 발전시켜 낸 것이 김일성주체사상이라고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품안에서 북한 인민은 결코 북한사회의 주인이 되지도 못했고,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를 갖지도 못했다. 자기정체성이 박탈당한 어둠에서 오직 복종과 체념의 순응만이 존재했다. 집단적 허위의식에 함몰됐던 사회는 참혹한 굶주림의 아사로 나타났고, 정치범 수용소를 만원으로 만들었다. 사회의 주인이어야 할 인민들은“주체의 지상낙원”을 걸어서 탈출했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그렇다면, 북한은 국제공산주의운동사에서 논리적 설득이 불가한 극단적 이단아라면 지나친 혹평일까? 사회주의자는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 한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두 번째 질문,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마르크스주의는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세습(世襲)”을 거부한다. 혁명의 치열한 도정(道程)에서 세습은 혁명의 장애물이다. 북한도 세습을“착취사회에서 특권계급의 신분에 기초하여 그 지위와 재산을 대대로 물려받도록 법적으로 고착시키는 반동적 제도”라고 가차 없이 선을 그었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오늘날 가장 성공한 3대에 걸친 세습독재의 나라가 됐다.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은 공식 후계자로 등극했고, 작년, 37세의 김정은은 김일성 다음으로 두 번째“수령”이 됐다. 김일성 왕조(王祖)의 완벽한 계승이다. 주체사상에 이어 세습으로 또한번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북한에서 배신당한 것이다. 레닌, 스탈린, 모택동, 카스트로, 시진핑의 시대에도 독재는 있으되 세습은 없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라기보다 김일성주의 종교국가로 전락한 절대권력의 전제(專制)적 독재국가다. 북한체제는 지배자의 신성(神性)에서 지배의 정통성을 찾는 동양적 군주제에 가깝다. 원로 학자 이상우 선생의 표현처럼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 신격화, 완벽한 김일성주의 경전(經典), 범접 불가의 로동당이라는 사제단(司祭團)을 갖춘 완전한 종교집단이 오늘의 북한이라면 지나친 모욕일까? 이런 체제에서 자유는 설 곳을 잃는다. 자유가 짓밟혔을 때 인간은 혁명을 꿈꾼다. 그러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혁명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자들의 축제들이라고 기염을 토했었다. 심지어 좌파 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허버트 마르쿠제조차도“자유는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라고 못을 박았었다. 한 발짝 양보하여 헌팅턴 교수와 같이“문명의 충돌”시각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간의 갈등이 자유, 평등, 번영이라는 목표를 향한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이라고 너그럽게 보아주어도 북한을 볼 때, 아닌 것은 아니다. 어쩌거나, 같은 핏줄의 민족인데 북한의 옹색한 변명과 끝 모를 일탈행위의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진정 역사의 박물관으로 가야할 사람들이 있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철학의 빛바랜 잔영(殘影)을 부여잡고 있을 영혼들일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과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다. 그래서 묻는다. 김정은 위원장, 당신은 어느 쪽인가?백병훈 약력
건국대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프라임경제신문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