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어렵사리 화물사업 부문 매각을 결정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큰산을 넘었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독점 해소’라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요구사항을 이행하고자 알짜노선의 슬롯을 반납하고 화물사업 부문까지 포기하는 등 사실상 손해만 봤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합병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강박에 의한 이사회 결정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화물사업 부문 매각 의결이 무효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애초부터 양사 합병 자체가 무리수였는데, 대한민국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 약화만 우려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화물사업 분리매각’ 석연치 않았던 이사회 의결 과정
이용우 의원 “강박에 의한 의사결정”…美 법무부 소송준비 해석까지
지난 2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5명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찬성 3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화물사업 분리 매각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인 EU집행위원회(EC)에서 그동안 여객‧화물 부문의 독점 문제를 해소하라고 요구해온 만큼, 화물사업 분리 매각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시정조치안을 제출해 내년 1월까지는 합병 승인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대한항공 측 구상이다.
당초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해당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중 1명(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전무)이 임시이사회를 하루 앞둔 10월29일 돌연 사의를 표명하면서 6명이었던 이사회가 5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진광호 전무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동안 그가 화물사업분리 안건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만큼 찬성 측으로부터 압박을 받았을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2일 진행된 이사회 의사결정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10월30일 진행된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인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에 대한 의결 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 7시간30분간의 격론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정회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M&A)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가 김앤장인데, 윤창번 고문이 김앤장 소속인 만큼 특별 이해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이후 11월2일 이사회와 아시아나항공은 윤창번 고문의 이해충돌에 대한 법리검토를 제3자 법무법인 로고스에 의뢰했지만, 이사회 당일 오전까지 의견서가 제출되지 않았고, 그 사이 아시아나항공 측은 기업결합심사에 관여하지 않은 로펌 5곳에서 받은 의견서를 제시했다
해당 의견서에는 ‘윤 고문이 이번 이사회 안건과 관련해 이해상충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사회에서 합의되지 않은 의견서를 앞세워 윤창번 사외이사가 참석하자, 반대 측 사외이사 1명은 반발해 표결 직전 퇴장해 ‘기권표’가 발생했다.
이후 로고스 측이 전달한 의견서는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직접 증거’는 찾기 어렵다”면서도 “해당 안건이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여러 억측과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아시아나 이사회 결정이 무효가 될 수 있다”며 이번 이사회의 결정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아니라 ‘강박’에 의한 결정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용우 의원 측은 198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투자조정정책 시행으로 현대그룹이 가지고 있던 현대양행을 정부에 넘긴 사건을 언급하며, 당시 현대그룹이 ‘강박에 의한 이사회 결정은 무효’라는 대법원 소송 결과를 토대로 이를 되찾아온 사례를 들었다.
이 의원은 금융위원장에게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아시아나에 보낸 공개발언, 국회 정무위 답변 등은 이사회의 자율적인 결정을 방해하고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미국 법무부는 화물부문 매각 관련 이메일 등 서류보전 절차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미국 법무부가 화물부문 매각이 편법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알짜사업’ 포기한 아시아나, 날개 내주고 돈 받아
몸집 큰 화물사업, 국내 LCC 받아낼 능력 있나?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화물사업 부문은 아시아나항공 전체 실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알짜사업으로 꼽혔다. 2021년 당시 화물사업 부문 매출은 아시아나항공 전체 매출의 72.5%까지 비중을 차지했다가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의 21.7%로 정상화됐다.
화물 사업부 분리매각이 이뤄지면,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 약화가 확실시 된다는 우려 속 대한항공 측은 아시아나항공에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입금했던 7000억원의 사용제한을 풀어주고 신규 영구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재무 부담 완화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산업은행에서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며 계속해서 압박을 하고 있는데다가 대규모 부채에 따른 이자비용 탓에 실적 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던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여객과 화물이라는 양 날개 중 하나를 내주고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화물사업을 누가 받을지 여부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가격은 약 5000억원에서 7000억원 사이로, 화물사업부 인수시 1조원 가량의 부채까지 떠안아야해 실제로는 1조+α 수준으로 예상된다. 몸집이 상당한 화물사업부를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받아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LCC는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인천 등으로, 티웨이항공은 내부적으로 인수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도 화물사업 항공운항증명(AOC) 재취득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내년 10월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EC가 매각 주관 수탁인을 지정해 인수자를 찾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헐값 매각’ 가능성이 커진다.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 약화만 우려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이유다.
현재 채권단인 산업은행에서는 합병 무산에 따른 ‘플랜B’는 없다는 입장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업결합 당시에도 EU의 벽을 넘지 못했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합병무산’, 성공한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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