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지난해 기업들의 ‘경영 성적표’라 할 수 있는 사업보고서들이 속속 공개되는 가운데, K-화장품 업계에서 대규모 지각변동이 이뤄졌다.
전통 강자인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애경산업 3사가 화장품 부문에서의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한 반면, 편집샵인 CJ올리브영과 ODM‧OEM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콜마‧코스맥스 등은 역대급 실적을 써냈다.
사실상 K-화장품의 트렌드가 중국이라는 큰손을 잃은 대신 진출국이 다양해지고, 고가‧프리미엄 화장품 보다는 중소형 브랜드의 제품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셈이다.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외부활동이 줄면서 화장품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들고, 대신 바디‧헤어 등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 역시 실적에 영향을 미친 모양새다.
LG생건‧아모레 형님들 울 때, 애경 아우 나홀로 웃었다
아모레퍼시픽, 4.8조→4.1조→3.6조 매출 뚝뚝 떨어져
LG생활건강도 8조→7.1조→6.8조 매년 감소세 뚜렷
몸집 작은 애경만 상승세, 5739억→6104억→6689억원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지난해 3조6739억6359만원, 영업이익은 1081억7125만원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연도별 매출액은 ▲2021년 4조8631억원 ▲2022년 4조1349억원 ▲2023년 3조6739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2021년 3433억원 ▲2022년 2142억원 ▲2023년 1081억원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저하는 전체의 90%에 육박하는 화장품 사업부문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
설화수‧헤라‧아이오페‧한율‧라네즈‧마몽드 등의 브랜드로 구성된 화장품 사업부문의 연도별 매출액과 사업부문 비율을 살펴보면 ▲2021년 4조3492억원(89.4%) ▲2022년 3조6777억원(88.9%) ▲2023년 3조2705억원(89%) 등으로 매년 줄어들었다.
미쟝센‧해피바스‧려‧메디안 등 생활용품(Daily Beauty) 사업부문 역시도 ▲2021년 5138억원(10.6%) ▲2022년 4572억원(11.1%) ▲2023년 4034억원(11%) 등으로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6조8048억원, 영업이익은 4870억원이었다. LG생활건강의 연도별 매출 등을 분석해보면 화장품 부문의 비중을 줄이고 HDB(생활용품) 부문과 Refreashment(음료) 부문의 비중을 높여간 것이 눈길을 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이 매출 하락세를 완전히 막기는 역부족이었지만, LG생활건강은 내부적으로 꾸준히 사업부문별 비율조정을 통한 체질개선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연도별 매출액은 ▲2021년 8조915억원 ▲2022년 7조1858억원 ▲2023년 6조8048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2021년 1조2896억원 ▲2022년 7111억원 ▲2023년 1081억원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더후‧숨‧오휘‧CNP‧VDL 등 화장품 부문의 연도별 매출액과 사업부문 비율을 보면 ▲2021년 4조4414억(54.9%) ▲2022년 3조2118억(44.7%) ▲2023년 2조8157억(41.4%) 등으로 매년 꾸준히 액수와 비율이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샴푸‧치약‧바디로션‧세탁세제‧주방세제‧생산원료 등을 포함한 HDB(생활용품) 부문은 ▲2021년 2조582억(25.4%) ▲2022년 2조2098억(30.8%) ▲2023년 2조1821억(32.1%) 등으로 비율이 꾸준히 증가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하락세를 보인 것과 달리 애경산업은 매년 개선된 실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애경산업의 지난해 전사 연결기준 매출액은 9.6% 증가한 6689억원, 영업이익은 58.7% 늘어난 619억원을 기록했다.
연도별 매출액을 보면 ▲2021년 5739억 ▲2022년 6104억원 ▲2023년 6689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영업이익 역시도 ▲2021년 244억원 ▲2022년 391억원 ▲2023년 619억원 등으로 우상향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화장품 부문에서 2022년 주춤하긴 했지만 다시금 반등했으며, 생활용품 부문 역시도 성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이지투웨니스‧루나 등을 포함한 화장품 부문의 연도별 매출액과 사업부문 비율을 보면 ▲2021년 2156억9000만원(37.6%) ▲2022년 2128억500만원(34.9%) ▲2023년 2419억500만원(36.2%) 등으로 2022년 주춤하다 다시금 늘어났다.
세탁세제‧헤어케어‧주방세제‧덴탈케어‧선물세트 등을 모두 포함한 HDB(생활용품) 부문의 연도별 매출액과 사업부문 비율은 합산해본 결과 ▲2021년 3164억3800만원(55.2%) ▲2022년 3437억6500만원(56.4%) ▲2023년 3357억4600만원(50.1%) 등으로 나타났다.
매년 꾸준히 성장한 CJ올리브영, 역대급 실적 썼다
한국콜마‧코스맥스도 역대급 실적, 중소형 중심 성장세
이처럼 전통적인 대형 화장품 회사들이 약세를 거듭하는 와중에 편집샵인 CJ올리브영과 ODM‧OEM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콜마‧코스맥스 등은 ‘역대급’ 실적을 써내며 K-화장품 트렌드를 주도했다.
CJ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별도기준 CJ올리브영의 상품매출을 살펴보면 ▲2021년 2조1076억6800만원 ▲2022년 2조7753억4700만원 ▲2023년 3조8529억6500만원 등으로 매년 대폭 상승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시에 따르면 2020년 9.7%였던 CJ올리브영의 시장점유율은 2023년에는 15%까지 늘어났다.
ODM(주문자개발생산)‧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의 역대급 실적도 눈길을 끈다. 중소형 브랜드의 ‘K-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면서 ODM‧OEM 관련 회사들의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이다.
한국콜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15.5% 증가한 2조1554억원, 영업이익은 86.4% 증가한 1366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콜마가 연매출 2조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스맥스 역시도 지난해 매출이 11.1% 증가한 1조7775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117.9% 급증한 1157억원으로 호실적을 냈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모두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형 화장품 회사들이 주춤하는 동안 틈새를 공략한 것은 중소형 화장품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벼울수록 실적이 훨훨 나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우선 K-화장품을 찾는 국가들이 기존에는 중국에 집중돼있었다면 지금은 일본‧미국‧유럽‧중동으로까지 다변화됐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큰손인 중국 ‘유커(游玩者‧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한국 화장품들을 쓸어가면서 이들이 올려주는 매출이 엄청났는데,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대형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엔데믹으로 다시금 매출이 회복되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중국인들이 단체관광보다는 개인관광을 선호하면서 실적 회복이 요원해졌다.
덩달아 고가‧프리미엄 화장품 보다는 중소형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들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점도 대형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기존에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했을 때는 고가의 프리미엄 급 화장품들이 인기몰이를 했다면, K-화장품을 찾는 국가들이 다양해지면서 인디 브랜드의 중저가형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도 탈중국을 통해 다양한 국가로의 진출을 꾀하고는 있지만, 중소형 브랜드를 고객사로 잡고 공격적으로 매출을 키워가고 있는 제조 전문 화장품 회사나 CJ올리브영 같은 편집샵에 대항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외부활동이 줄어든 것도 화장품 매출 저하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외출 전 바르는 색조 화장품 보다는 내 피부를 위한 기초 화장품, 무거운 향수 대신 향수처럼 좋은 향을 자랑하는 바디워시‧헤어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화장품 부문 매출이 줄고 HDB(생활용품) 부문 매출이 늘어난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