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오리온, 초코파이 대혁명 
[기업Hi스토리] 오리온, 초코파이 대혁명 
  • 김희연 기자
  • 승인 2024.05.20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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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초장수 히트 제품 초코파이를 보유한 오리온은 해외 매출 비중이 굉장히 높은 글로벌 식품 기업이다. 
오리온CI./사진=오리온
오리온 CI./사진=오리온
이를 증명하듯 오리온 심볼은 지구와 별을 상징하고 있다. 지구를 형상화한 둥근 원은 세계를 무대로 나아가는 오리온의 국제성을 의미한다. 점점 크게 움직이는 별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기업의 미래 의지를 나타낸다.

역사의 시작, 동양그룹
오리온의 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고 이양구 회장은 함경남도 출신으로 서울에 내려와 과자 판매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6·25 전쟁으로 모든 걸 잃게 됐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재기에 성공했다. 설탕 도매업을 기반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이 회장은 거대한 과자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풍국제과를 인수해 1956년 동양제과를 설립했다. 이 동양제과가 동양그룹의 시작이었다. 이후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신념 하에, 가난한 집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과자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과업에 진출한 이듬해에는 삼척 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이 또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 도시 재건 사업으로 시멘트 수요가 증가했고 바다를 낀 동양시멘트공장이 운송에 유리했다고 한다.

50주년 국민 과자, ‘초코파이’ 생산
1956년 오리온 캬라멜을 시작으로 웨하스, 마미비스켓 등 첫 시작이었던 제과 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74년 지금까지 전 국민이 즐겨 먹는 과자인 초코파이를 생산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초코파이의 모태가 된 과자는 미국 경제 공황 때 가난한 노동자들이 밥 대신 먹었던 ‘문파이’라고 한다. 1970년대 미국에 출장을 갔던 오리온 직원들이 카페에서 나오는 문파이를 맛보고 난 후, 2년 동안 개발에 매진한 끝에 초코파이가 나오게 됐다.

당시 크림빵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부드러운 마시멜로가 들어간 초콜릿 과자는 혁신적이었다. 제품은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는데, 초코파이가 출고되는 날이면 도매상들이 공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 1987년 치토스와 포카칩을 출시하며 국내 제과 기업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세 경영? 사위 경영
이양구 회장이 이끌었던 동양은 사업 확장을 이뤄갔지만 1983년 이 회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회장에게 아들은 없고, 딸만 둘 있었는데 혈육이 아닌 사위들에게 동양과 오리온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첫째 사위인 현재현 사장이 그룹을 이끌게 됐고, 둘째 사위인 담철곤 회장은 동양제과를 이어받았다. 이 회장이 건강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당시, 담철곤 회장은 2001년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16개 계열사를 동양그룹에서 분리한 뒤 오리온으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 

초코파이 전쟁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경쟁사들이 초코파이와 비슷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롯데 초코파이(1978년)', '해태 초코파이(1986년)’, '크라운 쵸코파이(1989년)' 등이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여전히 매출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크라운제과의 빅파이와 해태제과의 오예스가 등장하면서 압도적인 점유율이 깨지기도 했다. 

정 캠페인

오리온 초코파이情 김유정 냉장고편 30s./사진=오리온 공식 유튜브 장면 캡쳐
오리온 초코파이情 김유정 냉장고편 30s./사진=오리온 공식 유튜브 장면 캡쳐
그러나 '정('情)'을 내세운 마케팅으로 오리온은 초코파이의 혁신을 이끌었다. 초코파이 광고는 과자에 '情'이라는 '인성'을 부여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9년부터 오리온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의 광고들을 선보였다. 情 캠페인 광고는 '이사가는 날', '삼촌 군대 가는 날', '할머니댁 방문' 등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던 정서인 가족의 정, 이웃간의 정을 핵심 소재로 다뤘다. 2000년대 광고에는 담철곤 회장이 직접 등장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정”
현재 오리온의 초코파이 매출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중국과 러시아인데, 그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산권 보따리상들이 오리온 초코파이를 자국에서 팔면서 입소문이 났고, 이후 공산권이 점차 개방하고 수입하면서 인기가 더욱 증가했다. 

1997년도에는 중국에 초코파이 공장을 설립하고 제품명을 중국 정서에 맞는 '좋은 친구'로 정했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가족, 친구들이 모여 차와 함께 케이크를 곁들이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초코파이의 단맛이 잘 어울려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통령이 오리온 초코파이와 함께 차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정을 의미하는 'Thin'마케팅을 펼쳐 인기를 끌었는데 일부 베트남 사람들은 초코파이를 제사상에 활용한다고 한다.  오리온은 스테디셀러인 초코파이 외에도 ‘꼬북칩’, ‘고래밥’, ‘마이구미’를 비롯해 ‘닥터유 제주용암수’를 수출품 대열에 올려 폭넓은 해외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동양그룹의 몰락
동양제과는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첫째 사위인 현재현 회장이 이끈 동양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 회장은 동양그룹 경영권을 승계한 뒤 주력 사업으로 금융업을 선택해 1984년 임원들의 반대에도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했다. 

동양증권은 불과 5년 만에 10대 증권사로 성장했고 이후에도 동양생명, 대우투자금융 등을 인수, 설립하면서 금융그룹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동양그룹은 어려움에 빠졌는데 시멘트 사업에서 자금을 조달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업의 부진으로 시멘트 사업도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됐다. 자산 매각을 통해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 이것이 몰락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동양그룹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일반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가 상당했다는 것이다.  동양그룹은 고금리 회사채와 어음을 무차별적으로 발행했다. 이후 만기도래한 회사채와 어음을 막지 못했고 4만 명의 피해자들과 막대한 피해 금액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경영진들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한때 재계 10위를 유지했을 정도로 역사를 가졌던 동양그룹이 해체되고 현재현 회장은 사기 및 배임 행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오리온의 발자취
오리온은 한때 식품 제조 이외에 쇼박스, 메가박스, 온미디어 등 영화 및 미디어 산업과 베니건스, 바이더웨이 같은 편의점 및 레스토랑 사업을 펼쳤지만, 잉여 계열사를 대부분 정리하고 본업인 식품에 집중해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이는 중이다. 2017년 6월 1일부로 오리온이 계열사 오리온과 지주회사 오리온홀딩스로 분할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오리온은 2010년대 들어서 포장에서 빈공간을 줄이며 환경보호에 일조했고 가격 변동 없이 일부 제품의 양을 증량하며 소비자의 마음을 샀다.  또한 맛에 영양을 더한 ‘닥터유’와 자연원물 그대로의 정직하고 건강한 맛을 담은 간편대용식 ‘마켓오네이처’를 선보이며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특히 닥터유는 기존 ‘과자’ 이미지를 ‘식품’으로 확대하고, ‘맛있는 건강’이라는 핵심 콘셉트로 한 차원 높은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중이다. 올해에는 합성신약 개발사인 레고켐바이오를 인수해 바이오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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