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2024년을 맞이하는 한국, 한국인
[정인준 칼럼] 2024년을 맞이하는 한국, 한국인
  • 정인준
  • 승인 2024.07.0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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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BTS로 상징되는 K-pop과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에서 꽃피우고 있다. 기 소르망은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 본 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뿐이다”고 말한다. 이미 한국은 경제·문화적인 선진국이 되었고, 많은 아시아 사람들이 코리언 드림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에서 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방의 젊은이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들면서 이미 많은 시·군단위에서 지역 소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방대학의 외국 유학생 유치와 지자체들의 외국 근로자 취업 허가 확대 정책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43세 노총각 아들을 가진 필자의 지인도 금년 11월 캄보디아 며느리를 맞이한다. 2023년 말 국내 거주 외국인이 25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제 한국은 단군의 후손으로 단일민족이 아닌 다인종, 다문화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1960년대 초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 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5개년 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중산층을 육성한 한국은 70년 만에 최빈국에서 10대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저출산·저성장·고비용 사회에 접어든 한국의 경제성장이 멈추고 저출산율(0.7명) 추세가 지속되면 10-20년 내 한국의 경제적 번영도 쇠퇴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의 기적을 성취한 것은 80년대 까지 한국 정치와 사회의 주류이며 반공·보수 성향의 한국인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24년 4월 22대 총선에서 승부를 결정한 것은 보수·진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도층이다. 가디언·더 타임즈 등의 서울 상주외신특파원으로 활동한 마이클 브린은 저서 ‘한국, 한국인’(2018)에서 한국인은 토론을 할 줄 모른다면서, 민심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문제라고 말한다. 즉 한국인은 합리적인 법·제도에 의한 의사결정 보다는 어떤 쟁점에 대해 민중의 정서가 임계질량에 이르면 분노한 민심이 야수로 변해 의사결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2024년 초 총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힘이 다수당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측 되었으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인해 1-2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에 야수로 변한 민심이 정권심판론으로 바뀌면서 총선결과는 더불어 민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22대 총선은 반공·보수가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류가 아닌 것을 확인해 주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현장을 지켜본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은 5.16 쿠데타 등 건국 이후 한국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1968)에서 한국은 정치·사회의 모든 요소가 “태풍의 눈인 중앙 권력을 향해 치닫는 소용돌이형 국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재와 부가 서울로 집중하며 정당 리더쉽도 제왕적인 1인 보스에 권력이 쏠리는 권위주의 체제로 여·야 타협이나 정책을 위한 진지한 토론이 없다고 비판한다. 헨더슨은 한국전쟁과 과도한 보수주의, 과잉이념 대립으로 한국정치에서 중간지대가 상실된 것이 ‘서울의 비극’이고, 이는 소용돌이 정치문화를 부추겨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55년 전 미국 외교관이 관찰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가 개혁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다. 금년 초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건국정신과 정부수립 이후 농지개혁 등 업적을 재평가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상영은 50-60대 사이에 관람 열풍을 일으켰으나, 국민의 힘의 총선 패배로 이승만 기념관 건립지지 여론 조성은 쉽지 않을 듯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주의 법·제도 구축,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초석 마련이 21세기 한국의 경제·문화적 선진화의 토양이 되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나 국민의 힘이 대내외 도전에 처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중도층은 보수의 상징인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를 외면할 것으로 보인다. 140년 전인 1882년 조선 왕조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구미국가들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무대에 등장하였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이해하지 못한 당시 영남의 유림과 보수파의 쇄국정책이나 문명화된 일본을 모델로 조선을 개혁을 하려는 개화파의 갑신정변(1884)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1894년 조선의 갑오개혁이후 미국 개신교가 연희, 배제, 세브란스 등 조선의 의료 및 교육 분야 지원을 하면서 친미기독교파가 형성되었으며, 오늘날 불교보다 많은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19년 4월 출범한 상해 임시정부는 이승만의 친미외교독립노선과 이동휘의 친소무장투쟁노선으로 분열되었는데, 이는 독립운동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지지 세력으로 분열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이념 분열은 1925년 상해 임시정부 개조파 내각(서북파와 고려공산당 당원)의 이승만 임시대통령 탄핵에 이어 해방이후 한반도가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로 남북 분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분단으로 대륙국가 이던 한국은 해양국가가 되었고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쌓아 올렸으나, 지금도 국내 좌·우 이념갈등이 지속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다인종, 다문화국가가 되려 하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치지도자는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정책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치지도자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국내의 자산 및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외교전략 등 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으로 불안정한 세계 평화의 회복과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 경제의 번영을 위해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와 연대하여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일은 2024년 한국, 한국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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