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미정산 금액 2000억 규모로 예상…구영배 회장은 때아닌 ‘청사진’
싱가포르 현지에선 기획전까지…안일한 큐텐그룹, 중소기업유통센터도 뭇매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티몬과 위메프를 중심으로 불거진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로 인해 소비자들과 판매자(셀러)인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가 ‘5600억원+α’의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정부에서는 미정산 금액이 약 2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고 결단을 내렸지만, 정작 위메프‧티몬의 모회사인 큐텐그룹의 구영배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고객피해 규모는 여행상품을 중심으로 500억원 정도”라고 밝혀 극심한 온도차를 보였다.
특히 구영배 회장은 사태가 터진지 수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입장문을 낸 것도 모자라 “금번 사태가 수습되면 큐텐은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조정과 경영시스템 혁신에도 나서겠다”는 청사진까지 내놓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대목은 정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세금을 써서 피해구제에 나서는 반면, 일련의 사태를 초래한 큐텐그룹은 제대로 된 자금조달 계획도 밝히지 않고 싱가포르 현지에서 중소기업유통센터 등과 연계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판매자(셀러)들이 중소기업유통센터를 통해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했던 만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책임론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정부는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위메프‧티몬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관계부처 TF 회의를 열고 ‘5600억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최대 2000억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협약 프로그램 3000억원 저금리 대출 ▲여행사 지원 600억원 등이 포함됐다.
피해기업을 대상으로는 대출·보증만기를 최대 1년 연장해주고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납부기한을 최대 9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다른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길 경우, 입점을 지원하고 항공사·여행사 간의 협의를 통해 항공권 취소수수료도 면제해줄 방침이다.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서는 여행사·카드사·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사)의 협조를 통해 환불 처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여행·숙박·항공권 분야 집단분쟁조정 신청 접수가 8월1일부터 한국소비자원에서 시작된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미정산 금액만 티몬이 약 1280억원, 위메프가 854억원 등으로 2100억원이 넘는다. 실제 대금정산기일이 판매일로부터 5~60일인 것을 감안하면 미정산 금액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번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약속한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위메프·티몬에 있다”며 “정부로서는 선량한 소비자와 판매자가 입은 피해를 지켜볼 수 없기에,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판매자‧소비자만 발 동동…구영배 회장은 때아닌 ‘청사진’
닷새 만의 늦은 입장문 “한번 더 도전할 기회 얻고 싶은 솔직한 마음”
이처럼 정부가 세금을 써가면서 유동성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일련의 사태를 초래한 큐텐그룹에서는 안일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은 티메프 사태로 소비자들이 위메프 본사를 항의 방문(24일)한지 닷새 만인 29일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다 보니 입장 표명이 늦어진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뒤늦은 입장문을 내놓았다.
구 회장은 “양사(티몬‧위메프)가 파악한 고객 피해규모는 여행상품을 중심으로 합계 500억원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판매자(파트너사)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변수요인으로 인해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양사가 파트너사들과의 기존 정산 지원 시스템을 신속히 복원하지 못하면 판매자 피해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5600억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에 나서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구영배 회장은 소비자 피해를 ‘500억원’ 정도로만 보고 파트너사 피해규모는 제대로 추산조차 하지 못해 사태파악이 미흡한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구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경영상 책임을 통감한다며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금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피해규모 추산도 못한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부의 미정산 추산 ‘2100억원’과 구영배 회장이 입장문을 통해 밝힌 고객 피해규모 ‘500억원’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티메프 사태가 제대로 수습될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지만, 구 회장은 “금번 사태가 수습되면 큐텐은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조정과 경영시스템 혁신에 나서겠다”며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더 높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구 회장의 입장문에 대해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판매자들은 물론 소비자들까지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구 회장이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 만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난리인데, 싱가포르에서는 기획전?…정신 못 차리는 큐텐그룹
티몬‧위메프와 셀러 사이 다리 놓아준 ‘중소기업유통센터’…책임론 솔솔
구영배 회장 뿐만 아니라 큐텐그룹도 현실과 동떨어진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큐텐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GREAT K-WORLD SUPER SALE(훌륭한 K-월드 수퍼 세일)’ 등 기획전을 이어가고 있다.
해당 기획전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소기업유통센터 등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들과 연계한 사업으로, 유동성 위기로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이 정산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기관 이름을 걸고 행사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특히 일부 판매자(셀러)들은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진행한 ‘판판대로 사업’을 통해 티몬‧위메프에 입점하고 센터로부터 쿠폰을 지원 받았다며, 국가기관을 믿었는데 돌아온 것은 미정산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실에 따르면, 중소기업유통센터의 경우 소상공인 입점 수수료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올해 예산 중 114억원을 큐텐 계열사에 편성해 30억원을 이미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기관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기업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부실지원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는 전날인 28일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에 큐텐 계열사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중단 조치를 내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