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봉 변호사
[파이낸셜리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바람을 피워 놓고 이혼 소리가 가당키나 하나요?”
보통은 바람을 피우고 배우자에게 발각되면, 배우자가 이혼하겠다고 달려들면서 위자료를 청구합니다.
그런데 간혹 유책배우자가 찾아오셔서 상대 배우자가 이혼에 동의를 안 하는데 이혼하는 방법이 없겠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책배우자라 괘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청구를 배척만 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유책배우자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이혼 소송에 있어서 유책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혼 소송 제도에서 적용되는 원칙으로, 불륜 등 귀책사유가 있는 유책배우자는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유책배우자의 귀책사유가 혼인 파탄의 원인이 된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다음의 두 경우는 유책배우자임에도 그에 해당하지 않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첫째로, 상대방도 나와 버금가는 잘못이 있어, 이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하는 경우입니다. 쌍방에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 법원은 일방의 이혼 청구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상대배우자의 결점이 어느 정도 본인의 유책성에 필적하는 잘못이어야 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잠자리를 오랫동안 거부하고 상대를 방치하여 그 외로움을 못 이겨 불륜을 하였다거나, 나중에 알고 보니 맞바람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 그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미 혼인 관계가 다른 원인으로 파탄이 나 있었던 경우입니다. 즉, 내가 바람을 피운 것은 혼인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경우입니다.
유책배우자가 바람 피우기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장기간 별거 중 이였거나, 이미 오래도록 부부싸움이 심하여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두가지 경우가 아닌 경우임에도 유책배우자의 재판상 이혼 청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유책주의의 예외가 적용되는 경우입니다.
원래, 혼인 파탄에 대해 홀로 원인을 제공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상대 배우자가 악용하는 등 혼인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부당해 보이는 사례가 나오게 되면서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판례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배우자가 혼인 관계의 회복에는 관심도 전혀 없으면서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상대의 이혼 청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바람 피운 배우자는 잘못을 뉘우치고 불륜을 다 정리하여 가정에 충실하고자 하는데, 상대 배우자는 지속적으로 과거를 끄집어 내면서 죄인 취급하고 무시하며 괴롭히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면 아무리 유책주의를 적용하더라도 혼인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책주의의 예외가 인정되기 위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상대 배우자의 의사와 태도입니다. 상대에게 “도저히 결혼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사람이 보일 행동이 아니다” 이러한 점이 드러나야 합니다. 무시하는 말투, 틈만 나면 과거 얘기를 하며 구박하고, 무례하며, 생활비 지급을 잘 하지 않고, 잠자리도 거절하는 등의 태도들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개선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이혼을 거절하고 결혼생활을 계속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는 혼인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잘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혼인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입니다. 유책배우자는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행복했던 결혼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이 지속되고 축적돼 “이제 나도 할만큼 했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 상대배우자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혼인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부당해 보이게 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양적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법원은 책임이 없는 상대배우자와 자녀가 이혼으로 인하여 경제적 또는 정서적으로 고통받지 않을지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소송 중에도 생활비와 양육비를 지급에 충실하고, 면접교섭 절차를 잘 이행하며, 재산분할에서 어느 정도 양보하는 등으로 배우자와 자녀의 생활을 배려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 법원을 안심시켜 주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정되기 위해서 유책배우자가 “유책성을 상쇄시키고, 유책성이 희석될 정도”로 상당한 기간 동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우자와 자녀를 배려하는 모습 등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엄격한 조건 하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한다는 점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직은 유책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법원은 유책배우자에 대해 일단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에 불륜 등 잘못을 저지른 유책배우자의 이혼소송은 일반적인 이혼소송보다 당연히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법원의 최근 바뀐 시각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으니,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