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항상 어떠한 사정 속에서도 의미를 갖는 법이고 그 존재의 무한한 뜻은 고뇌와 죽음까지고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싸움의 전망이 비록 흐리다 할지라도 싸움의 의미가 감소하거나 인간존엄성이 약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곤란한 때와 또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에 우리들 각자를 누군가가 찾고 있을 것이며,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친구,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생존자, 한 사람의 죽어간 사람, 그리고 하나의 신께서. 그는 우리들이 그를 실망시키지 말 것을 기대하고 또 우리가 비애에 젖지 말고 자랑스럽게 죽을 것을 알고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_빅터 프랭크의 아우슈비츠 강연(Auschwitz Adress) 중에서
[파이낸셜리뷰]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인물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부모와 아내, 두 자식 그리고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인생을 겪으면서 이 보다 더한 고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프랭클은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받으면 반만 마시고 나머진 세수를 하기 위해 남겨두었고 유리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 턱없이 부족한 물로 세수를 하려니 청결은 물론 수 없이 유리에 베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는 몸 씻기와 면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코 낙담이나 절망적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른 유대인들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개돼지처럼 살아갔지만 그는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으며 덕분에 다른 유대인들에 비해 건강해 보여 가스실행을 면할 수 있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랭클은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발동시켜 ‘의미’를 찾고 극한 역경을 견뎌낸 것이다. 인생에 고난과 고통이 가중될수록 그 ‘의미의 등불’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하루는 수용소 전체가 정전이 되어 사람들이 배고픔과 추위 속에 몸서리를 치며 누워있는데 프랭클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일어나 설교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다. 연설의 내용인즉 이윽고 수용소에 불이 들어오고 그때 프랑클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비틀거리며 몰려오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았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후 프랑클은 자신이 겪는 체험을 토대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을 펴냈으며 고로테라피(Logotherapy 심리치료)라는 치료이론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의사로 생을 마쳤다. 전신기 발명가 모스 (1791-1872) 사망일. 미국의 발명가(1791~1872). 미술 교수로 있으면서 1837년에는 전자석을 이용한 전신기를 발명하였고, 1843년에는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의 전보 통신에 성공하였다. 모스 부호의 고안자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