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한국콘트롤데이터社
[기업Hi스토리] 한국콘트롤데이터社
  • 전완수 기자
  • 승인 2022.12.08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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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한국콘트롤데이터사는 미국 방위산업체가 1967년 컴퓨터 기업장치 생산업체로 설립한 회사다. 40명이었던 종업원이 1969년 400명으로 늘어났고, 매년 막대한 금액을 본사로 송금했다. 외국계 기업이기 때문에 임금 등 노동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는 노조 결성에 방해를 했다. 1973년 12월 20일 8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조를 설성했고, 창립 3일 만에 조합원 600명을 확보했다. 다만 1976년 회사와 결탁한 지도부를 몰아내고 1977년 5월 새로운 지도부를 꾸렸다. 그러면서 1979년 주 42시간이라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뤄냈다.
한국콘트롤데이터사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특히 여성 노동운동에 중요한 기업익디ㅗ 하다.

공순이가 아닌 여성 노동자로

한국콘트롤데이터사 노조는 공순이가 아닌 여성 노동자로 대우받기를 바랐다. 이에 남성 중심 권위주의에 저항하면서 노조 조직화를 이뤄냈다. 이런 의미로 콘트롤데이터 노조는 노동환경 개선과 더불어 여성 노동운동의 인권 신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게 됐다. 남녀임금 차별 철폐, 미혼여성의 부양가족 인정 등을 내걸었다. 8명이서 노조를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수백명으로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통근버스 사건이다. 회사는 1974년부터 통근버스를 운행했는데 앞쪽 2줄 정도는 남성 관리자용으로 비워두는 것이 관행이었다. 1977년 10월 몸이 아픈 한 여성 노동자가 해당 자리에 앉았고, 남성 관리자가 버스에 타자 비켜줬지만 ‘X가지가 없다’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이에 노조를 찾아갔고, 노조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녀 대결로 회사는 몰아갔다. 이에 노조는 논조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생산량 50% 태업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결국 문제의 남성 관리자는 1개월 정직과 공개사과를 해야 했고, 통근버스에 자리를 남겨두는 관행이 사라졌다.

부양가족 임금 격차

또 다른 문제는 부양가족 인정이다. 당시 여성 노동자는 부양가족에 대한 의무가 없다고 회사는 주장했지만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여성 노동자가 평균 2.6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임금이 낮은 여성 노동자에게 30%, 남성 관리자에게 26%의 임금 인상률을 적용해서 격차를 좁혀 나갔다. 생리휴가를 역시 이들 노조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결혼하거나 임신할 경우 퇴직을 한다는 것 역시 철폐됐다. 또한 수유 시간 확보와 탁아소 운영 등도 시도를 했지만 폐업을 하면서 중단됐다. 화장실 숫자 증설 역시 노조가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이런 노조의 활동에 전두환 정권은 상당히 거슬렀다. 이에 미국 본사를 상대로 공장 폐쇄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미국 본사는 공장이 계속 가동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공장 철수를 해야 했다. 한국콘트롤데이터 회사는 결국 폐업이 됐지만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에 한 획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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