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대한민국 바다를 지켜준 백두산함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74년 전인 1950년 4월 10일 대한민국 해군 최초 전투함인 ‘PC-701 백두산함’이 실전배치 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가재정 상황은 여유롭지 못했다. 당연히 대한민국 해군은 군함을 구입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백두산함의 모습 (사진출처 미국 해군역사센터)
백두산함의 모습 (사진출처 미국 해군역사센터)

해군은 자체적으로 군함을 구입하고자 했다. 그리고 해군 장병들은 자신의 월급에서 5~10% 거출해 군함 구입비에 보탰다. 당시 해군 신임 장교(소위) 월급은 1만원이었다.

여기에 해군부인회에서는 뜨개질을 한 수예품을 모아 팔고 삯바느질에 의복 세탁까지 해가며 돈을 보탰다. 그 결과 3달 만에 1만5000달러가 모였다. 

이에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1909~1980, 향년 80세) 제독이 당시 대통령이자 훗날 독재정치를 하는 이승만(1875~1965, 향년 90세)을 찾아가 군함 구입 예산을 요구했고 이후 정부에서 4만5000달러를 지원했다. 

1949년 10월 17일, 그렇게 한국 해군은 금액 1만8000달러를 들여 PC-701 백두산함을 구매했다. 이 전투함은 한국 해군 최초 전투함정이였다. 이후 백두산함은 미국 괌을 거쳐 포탄 100여발을 싣고 창원 진해항으로 들어와 1950년 4월 10일 실전배치 됐다. 

이후에도 한국 해군은 백두산함에 이어 PC-702 금강산함, PC-703 삼각산함, PC-704 지리산함을 구매했다. 

백두산함은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건조한 PC형(구잠함 : 적의 잠수함 정찰이 주 임무였던 군함) 361척 중 하나였다. 백두산함은 1944년 취역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퇴역해 무기 다 떼어내고 뉴욕주에서 해양대학교 실습선으로 쓰이던 배였다. 

한국 해군 측이 배 이름을 백두산함이라고 정해두었는데, 미국 해양대학교에서도 실습선에 붙인 이름이 ‘화이트헤드 소위(Ensign Whitehead)’였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망한 졸업생을 기념해 붙인 것인데, 백두산함과 영어의 뜻이 일치했다. 

대한해협 해전을 승리로 이끌다

1950년 6월 25일 북측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백두산함은 6월 25일 오전 진해통제부사령관으로부터 동해로 강원도 묵호항 인근으로 긴급 출동 명령을 받았다. 백두산함의 임무는 북측 함선들의 상륙을 저지 또는 격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백두산함은 출동 명령을 받고 동해로 향하던 중 부산 앞바다 대한해협 인근에서 미식별 선박을 발견했다. 국기가 표시되지 않았고 선박엔 무장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북한 정규해군과 육전대 복장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상부(해군본부, 국방부)는 백두산함에 “해당 선박이 북측 무장 선박으로 확인될 시 사격하라”는 명령을 지시했다.

이에 백두산함은 북측 선박에 위협사격을 가했고 적선은 주포와 중기관총으로 대응사격을 했다.

교전 끝에 북측 선박은 침몰했고 백두산함은 대한해협에서 발생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는 추후 '대한해협해전'으로 불리게 됐다.

대한해협해전 승리로 인해 당시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던 부산항의 안전을 확보했으며, 북측의 후방교란 작전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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