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조선인을 가두고 총칼로 학살하고 불질러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5년 전인 1919년 4월 15일 일제가 3.1대한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원 제암리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일제가 저지른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은 1919년 민족의 거족적 운동인 3.1독립만세운동을 향한 보복 행위다. 당시 일제 군경이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사는 민간인 20여명을 학살하고 민가 30여호를 불태웠다.

제암리 학살 사건 이후 파괴된 제암리 민가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암리 학살 사건 이후 파괴된 제암리 민가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1919년 3.1운동은 거족적 독립운동으로 국내 곳곳에서 독립을 향한 열망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1919년 3월 31일 수원 제암리 인근 발안 장터(경기 화성시 향남읍 위치)에서도 장날을 맞이해 군중 1000여명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을 외쳤다.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1919년 4월 15일 화요일 낮에 제암리에 거주하는 마을사람을 대상으로 교회에서 기독교 강연이 있다고 속인 후 남자 신자 20여명을 모이게 했다.

그리고 나선 건물 내부 출입구와 창문 등을 모두 잠그고 안에 모인 조선인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후 일제는 이러한 만행을 세간에 숨기기 위해 교회 건물에 불을 지르기 까지 했다.

또한, 불속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총칼로 무참히 학살했다. 그렇게 일제로부터 희생당한 조선인은 28명이었다.

일제의 이러한 만행은 미국 선교자이자 교육자인 언더우드(1859~1916, 향년 57세)와 영국인 선교사 스코필드(1889~1970, 향년 81세)에 의해  세간에 드러났다.

먼저, 언더우드는 제암리 학살 소식을 접하고 빠르게 영사관 직원들과 현장을 방문해 참상을 확인했다.

이후 스코필드가 현장에 도착해 사진과 학살 증언을 수록한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보내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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