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64주년
민중의 독재자 심판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64년 전 1960년 4월 19일 이승만(1875~1965, 향년 90세)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요구한 범국민적 시민운동 4.19 혁명이 일어났다.

4.19 혁명 당시 거리로 나온 학생들 (사진출처 행정안전부 '기록으로 보는 4.19 혁명')
4.19 혁명 당시 거리로 나온 학생들 (사진출처 행정안전부 '기록으로 보는 4.19 혁명')

'갈 때까지 간' 이승만 독재정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는 1952년 '발췌개헌(이승만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직선제로 헌법을 고쳐 강압적으로 통과시킨 개헌)'과 1954년 '사사오입개헌(정족수 미달 된 헌법개정안을 통과 시킨 사건)' 등으로 장기집권 발판을 마련했다.

먼저 이승만은 발췌개헌 과정에서 부산정치파동(1952)을 일으켰다. 부산정치파동은 이승만이 자신의 대통령 연임을 위해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국회 해산을 요구하고 정치 폭거를 자행한 사건을 말한다.

이승만은 자신에게 유리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자 했지만, 당시 국회는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다수였기에 개헌안은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이에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폭력을 사용해 대통령 직선제 목적을 달성했다.

이후, 1954년 사사오입개헌 후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무소속 조봉암 후보를 누르고 당선 된 후, 1958년엔 경쟁자였던 죽산 조봉암(1898~1959, 향년 60세)이 진보당을 창당하자 그에게 간첩죄 혐의, 즉 누명을 뒤집어 씌워 사형은 선고하고 1959년 7월 31일 형을 집행하는 사법살인까지 저질렀다. 

그의 야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1960년 3월 15일 4대 대통령·부통령에선 대놓고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승만은 대한반공청년당 등 단체를 앞세워 정치폭력과 테러를 일삼게 해 상대 진영의 선거를 방해했다. 아울러, 투표함 바꿔치기, 공개투표, 4할 사전투표(기권표, 사망자, 전출자 등으로 전체 투표의 4할에 이르는 수치를 자유당 표로 투표함에 채움)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선거 결과는 조작을 가한 이승만이 총투표자 1000여만명 중 960여만명 득표로 88.7%를 기록했다. 이에 민주당은 선거 당일 이같은 결과를 규탄하며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김주열 열사의 생전 모습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김주열 열사의 생전 모습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성난 민심, 혁명을 일으키다

3.15 선거는 누가 봐도 공공연한 부정선거가 명백했다. 이에 민심 역시 이승만 독재정권을 향해 들끓었고 부정선거 당일인 3월 15일 저녁 경남 마산에서 부정선거규탄 시위가 열렸다.

부정선거 당일 경남 마산에서는 많은 학생과 시민이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정권은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평화시위를 진압했고 4월 11일 마산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1944~1960, 전북 남원 출생, 향년 15세)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발견돼 국민의 분노는 폭발하고 말았다.

4월 19일, 이승만으로부터 훼손된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군중의 시위가 발생했다. 그 규모는 범국민적이었으며, 학생과 성인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선거무효, 독재타도를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여전히 하야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던 경찰은 무력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고 이날 국내 시위 참여자 중 130여명이 사망, 부상자 6000여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신을 향한 민중의 정의로운 심판에 벗어날 수 없었다. 4월 25일 국내 각 대학교 교수 300여명이 이승만 하야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들과 서울시내를 행진했다.

결국 이승만은 1960년 4월 27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민중들은 독재 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기만·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자들에게 4.19 혁명으로 정의의 심판을 내려 역사를 바로 잡았다.

4.19 혁명은 독재 정권에 맞선 군중의 정의로운 항거이자 대한민국 시민의 민주정신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4.19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표기하며 그 의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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