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3] '용서의 언덕'에서 느끼는 것, 채우기 위해 버려야 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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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3] '용서의 언덕'에서 느끼는 것, 채우기 위해 버려야 하는 용기
양시영 인플루언서
승인 2023.08.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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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도 험한 언덕, 스페인 태양을 온몸으로 받은, '용서의 언덕'
-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영원한 숙소, 공립 알베르게
- 미사 후 신부님에게 받은 작은 선물, 한국인 기도문을 정독해본다
[파이낸셜리뷰=양시영 인플루언서] 4일 차 순례가 시작됐다. 오늘은 팜플로나(Pamplona)에서 21km 떨어진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가는 여정이다. 보통 팜플로나 같은 대도시를 빠져나가는 데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나는 도시 구경하는 걸 좋아해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다 보니 2시간 만에 팜플로나를 벗어날 수 있었다. 구경에 너무 몰입해 본의 아니게 순례길을 이탈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주민들이 먼저 다가와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눈물의 ‘용서의 언덕’을 오르다
보통 25km 이내 구간은 순례길 중 짧은 여정에 속한다. 하지만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오늘은 ‘용서의 언덕’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언덕 중 유독 ‘용서의 언덕’이 유명한 이유는 언덕이 꽤 길고 험해서 체력 소모도 큰 데다가, 오르는 동안 그늘이 전혀 없어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해 악명 높아졌다고 한다.
더욱이 ‘용서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유래 또한 원수와 함께 오르더라도 힘든 길 덕분에 서로 의지하다 용서할 수 있게 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고된 길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하염없이 언덕을 걷다 보니 체력적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그 돌을 째려보다 문득 이 크고 못생긴 돌을 언덕까지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용서받을 일도, 용서해야 할 일도 참 많았는데 그런 무거운 마음,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돌에 담아 그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용서의 언덕에 도착해 마침내 돌을 조형물 옆에 내려놓으니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는데, 막상 홀연히 두고 가려니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채워나가기 위해선 과감하게 버릴 용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시원섭섭한 마음은 언덕에 홀연히 두고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났다.
숙박비가 7유로? 가장 저렴했던 푸엔테 라 레이나 공립 알베르게
오늘 묵을 곳은 푸엔테 라 레이나의 공립 알베르게다. 사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너무 작은 마을이라 사설 알베르게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숙박비는 7유로로 순례길에서 만난 가장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였는데, 물론 저렴한 만큼 다소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다.
카운터에서 2층 침대를 배정받아 올라가니 침대엔 난간조차 없었고 천장엔 곰팡이도 여기저기 펴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다. 더욱이 난간이 없는 2층 침대라 이 높이에서 자다 떨어지면 앞으로 순례는커녕, 한국에 돌아가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밤새 뒤척이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5일 차는 많은 순례자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Estella)까지 걷는다. 하지만 길도 평이한 편이고 점차 몸과 마음이 순례길에 적응해서인지 나는 아예기(Ayegui)라는 마을까지 2km 더 걸었다. 마을에 다다르기 전, 아예기 공립 알베르게가 깔끔하고 넓다는 후기를 봤는데 정말 다른 알베르게보다 쾌적한 편이었다. 봉사자분께 들으니 동네 체육관으로 썼던 건물을 공립 알베르게로 개조해 운영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큰 실내 운동장에선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했고, 구내식당은 순례자들을 위한 식당으로 쓰이고 있었다. 오후 6시에는 순례자를 위한 저녁 식사가 12유로에 제공되는데 스파게티부터 스테이크, 디저트와 와인까지 순례자들과 함께 하하 호호 수다 떨며 몸과 마음 모두 배부르게 채울 수 있었다.
순례길의 명물, 와인 수도꼭지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명물, 와인 수도꼭지를 보는 날이다. 7년 전 첫 순례에서 조가비에 와인을 따라 마셨던 추억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꼭 그러고 싶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와인이 모두 소진된 상태라 단 한 방울도 맛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수도꼭지 사진만 연신 찍다가 자주 뵀던 일본인 순례자인 에이지 할아버지께 하소연하기도 하며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로 향했다.
오늘도 체력이 남아 한 마을 더 가볼까 싶었지만, 로스 아르코스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빠져 이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식사도 하고 마을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는 성당에 가 보기로 했다. 미사 시간에 맞춰 가니 각자 출발 시간이 달라 길에서 만나지 못했던, 하지만 얼굴은 익숙한 순례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 미사를 드렸고, 미사 후엔 신부님으로부터 강복과 함께 작은 선물 또한 받을 수 있었다.
선물은 바로 각 나라의 언어로 쓰인 순례자들을 위한 기도문이었는데, 한국인 순례자가 워낙 많다 보니 한국어 기도문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따뜻한 빛과 은총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기도문을 정독하며 다시 한번 오늘이 있음에, 순례할 수 있음에,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7년 전과 같은 길을 새로운 경험과 색다른 감정으로 채워가며, 나는 진정한 ‘산티아고 순례자’로 거듭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