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본격적인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은 대부분 ‘찻잔 속 돌풍’에 그쳤지만, 날이 갈수록 기업의 경영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강해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의 편이라고 말하지만, 몇몇 사례에서는 그들도 결국 ‘차익실현’이 최우선인 헤지펀드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행동주의 펀드의 양면성에 대해 정부에서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기업 경영개선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 속내는?
행동주의 펀드의 그림자…장기적 성장 외면한 먹튀 사례들
행동주의 펀드는 일정 부분의 지분소유를 바탕으로 단순 투자보다 주주가치의 단기적 상승을 목적으로 기업 경영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이 주로 요구하는 내용들은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보유지분 매각 ▲구조조정 등이다.
주로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면 결과적으로 개미 투자자들에게 실질적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아름답게 비유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긍정적 움직임으로 비쳐지지만, 출발선 자체가 ‘헤지펀드’다 보니 행동주의 펀드의 목적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적 가치 회복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미국시장 등에서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움직임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기보단 늑대의 사냥에 가까워 ‘울프팩(wolfpack) 전략’으로 불려왔는데, 다수의 헤지펀드 중 우두머리가 특정 회사의 주식을 매집하면 다른 펀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식을 사들이고 적극적 경영개입으로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감에 따른 평가였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을 놓고도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주주 행동주의의 결과물이라 말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먹튀의 또다른 형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 움직임에 대한 대표적인 국내 사례는 ▲금호석유화학(차파트너스) ▲대한항공(KCGI) ▲삼성물산(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오스템임플란트(KCGI) ▲태광산업(트러스트자산운용) ▲JB금융지주(얼라인파트너스) ▲KT&G(안다자산운용) ▲SK케미칼(안다자산운용) ▲SM엔터테인먼트(얼라인파트너스)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대한항공·금호석유화학 등에서는 ‘경영권 다툼’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오너일가가 행동주의 펀드와 손을 잡고 지분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올해 들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가 행동주의펀드인 차파트너스와 연계해 자사주 매각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과거 2021년 박 전 상무가 회사를 바로잡겠다며 ‘조카의 난’으로 불린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전례 때문에 말들이 많다.
차파트너스 측에서는 “경영권 분쟁과는 무관한 주주활동”이라 말했지만, 박 전 상무로부터 주주제안권을 위임받은 만큼 100% 무관한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차파트너스는 금호석화 주가 저평가를 이유로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금호석화 역시 주주환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향후 3년간 보유 자사주의 50%를 소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대한항공 역시도 2021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땅콩회항’으로 유명한 조현아 전 부사장이 행동주의 펀드와 손을 잡았지만 결국 먹튀라는 결과물로 끝난 전례가 있었다.
당시 조양호 회장의 타계 이후 상속재산 분할과 경영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와 손을 잡고 경영권 확보에 뛰어들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에는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여동생인 조현민 당시 한진칼 전무가 가세해 방어전을 펼쳤다.
그 전부터 대한항공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갑질 사건으로 부정적 여론이 극에 달한데다가 900%에 달하는 부채비율에 허덕이고 있었다. 당시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2대 주주로까지 영향력을 키웠지만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국민연금이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최종 패배했다.
이후 코로나19가 터졌지만 대주주 KCGI의 구체적 역할은 보이지 않았고, 지분매입 4년여 만인 2022년 KCGI는 한진칼 주식 940만주(13.97%)를 호반건설에 매각하며 막대한 규모의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먹튀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인 2023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해온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모회사 얼라인홀딩스가 SM 주식 1만주를 매도해 차익실현을 하면서 ‘먹튀’ 논란이 불거진 것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역시 하이브와 카카오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던 시절, 행동주의 펀드 얼리인파트너스가 주주권리 행사를 명분으로 영향력을 키웠지만 결과는 차익실현으로 끝났다. 이 때문에 주주행동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운 헤지펀드들이 장기적 기업 성장은 외면한다는 비판이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기업가치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 주요 상장사들 역시 배당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나서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요구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들은 단연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회복하고, 오너리스크가 심한 기업을 견제한다는 긍정적인 역할들도 해낼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에 보탬이 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보여준 결과물이 단기적 주가 부양에는 부응했지만, 기업 자체를 건실하게 만들어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경영권 시장 자체의 공격·방어수단이 잘 돼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법률적으로 하기 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만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이 미국 자본주의 시장과 유사하지만 세세한 부분 등에서는 다른 점도 많기 때문에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움직임에 대해 선과 악을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며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기업이 무조건 응해야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경영진이 주주와 다른 방식으로 소통에 나서 신뢰를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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