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12] 제주에서 평양냉면을?
[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12] 제주에서 평양냉면을?
  • 김민수 여행작가
  • 승인 2024.06.12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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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전문기자들도 극찬한 제주 평양냉면, 대동강초계탕
- 애피타이저로 나온 양념돼지구이와 백김치로 ‘소주 한 잔’
- 초계탕 맛본 이연복 쉐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끌리는 맛”
초보자도 도전할만한 대동강초계탕의 평양냉면.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초보자도 도전할만한 대동강초계탕의 평양냉면.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파이낸셜리뷰=김진수 여행작가] 전라북도관광마케팅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어청도 팸투어 때 일이다. 참가자 중에는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가 있었다. 평소 그의 여행 기사를 좋아하던 터라 가깝게 지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룸메이트가 됐다.  여행 이야기, 사는 이야기가 술술 풀려갔던 것은 아마도 격의 없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살고 있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가 물었다.  “표선이 가깝잖아요. 혹시 평양냉면 드셔보셨어요?” 
물론 금시초문이었다.  최근 ‘내밀한 계절’이라는 여행 엣세이를 펴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와는 필리핀 출장을 함께 다녀왔다. 그에게도 제주 성읍에 살고 있다고 했다. “표선에 끝내주는 평양냉면 식당이 있는데, 가보셨어요?” 박경일 기자와 강경록 기자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극찬했던 식당의 이름은 ‘대동강초계탕’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두 사람은 당시 동행중이고 더욱 기막힌 우연은 그날 오후, 승효상 건축가를 취재하던 많은 사람 속에 그들과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방이 노출되어 있는 식당 내부.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주방이 노출되어 있는 식당 내부.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소주 반병을 비우기에 딱 좋은 양념돼지구이와 백김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소주 반병을 비우기에 딱 좋은 양념돼지구이와 백김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북한에서는 하루 한 끼 면을 먹는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북한에서는 하루 한 끼 면을 먹는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톡쏘는 식초향이 절묘한 초계막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톡쏘는 식초향이 절묘한 초계막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처음 ‘대동강초계탕’을 찾아간 것은 2년 전 여름이다. 식당은 표선과 남원 사이 일주동로 변에 있었다. 외관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내부는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리실이 노출돼 재료와 도구, 손놀림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음식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평양냉면과 초계막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잠시 후, 양념돼지구이와 백김치가 테이블 위에 앞장서 올랐다.  ‘오, 이건 뭐지?’ 짐짓 갈등했던 선주(先酒)의 방식은 예기치 않은 찬의 등장으로 쉽게 해결됐다. 짭조름한 양념이 바삭하게 밴 양념구이는 맛도 있었지만, 양도 적당했다. 기분 좋은 애피타이저, 접시와 소주 반병이 딱 비워졌을 때 평양냉면과 초계탕이 나왔다. 투명한 육수 바다에 섬처럼 떠 있는 메밀면을 마주하니 반가움이 앞섰다.  ‘제주, 그것도 표선에서 평양냉면이라니..’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슴슴함을 각오했지만, 일찍이 경험했던 노포들과는 다른 독특한 풍미가 느껴졌다. 한약재가 들어갔음 직한 육수 향은 깊고 진했으며 그 조화는 오히려 부드러웠다. 면 뭉치의 해체 작업도 간단했다. 고명을 침수시킨 후, 젓가락으로 두어 번 저어내자 순식간에 풀어졌다. 생면의 신선함 때문이다. 과하지 않은 쫀득함이라니, 내공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대동강초계탕 이정옥 사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대동강초계탕 이정옥 사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초계탕에 들어간 닭고기와 냉채.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초계탕에 들어간 닭고기와 냉채.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초계탕에 별도로 나오는 메밀면사리.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초계탕에 별도로 나오는 메밀면사리.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대동강초계탕’의 이정옥 사장은 탈북민이다. 교포인 남편 심명국씨와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후 2008년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이 사장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음식솜씨 좋기로 유명했다. 고향인 함경북도 천진에서는 그녀가 만든 손두부와 소주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함흥냉면이 아닌 초계탕과 평양냉면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을 연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외갓집이 있던 신의주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냉면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녀는 외할머니 곁에서 자연스레 음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초계탕으로 먼저 인정을 받았다. 2017년 채널 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북한 음식 경연에 참여하여 대상을 거머쥔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연복 쉐프는 그녀의 초계탕을 맛본 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끌리는 맛, 누가 먹어도 싫다고 할 수 없는 맛’이라는 심사평을 남겼다.
특별할 것 없는 대동강초계탕의 외관.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특별할 것 없는 대동강초계탕의 외관.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는 온반이 제격이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는 온반이 제격이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메밀전과 닭무침을 더해 선주후면.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메밀전과 닭무침을 더해 선주후면.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온반에 찬이 더해지면 푸짐한 한 상이 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온반에 찬이 더해지면 푸짐한 한 상이 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내성적이던 아내의 인맥이 넓어진 배경에는 표선 목욕탕이 있다. ‘대동강초계탕’의 이정옥 사장 역시 목욕탕 멤버라 아내와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다. 아내의 힘을 빌려 그녀에게 냉면 육수의 정체를 물었다. “본디 평양냉면은 소고기 달인 물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육수로 썼어요. 그런데 그런 귀한 냉면을 어디 서민들이 먹을 수 있어야죠. 북한에서는 하루 한 끼 꼭 면을 먹습니다. 그리고 냉면은 여전히 대중적인 음식이에요. 보편적인 평양냉면에는 소량의 소고기에 돼지고기, 닭고기를 섞어 만든 육수가 들어갑니다. 이정옥 사장 또한, 현재 북한의 서민 레시피를 존중한단다. 대신 호불호가 있는 닭고기를 제외한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다. 그것에 소금과 간장으로 약 간을 하고 감초, 대추, 계피 등 한약재를 끓여 넣는다니, 비법까지는 아니어도 풍미의 진실이 어느 정도는 밝혀진 셈이다. 한편, 면은 40% 메밀가루를 직접 반죽한 후, 기계로 뽑는다. 탱탱한 식감과 편안한 속을 위해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고. ‘대동강초계탕’은 제주에 살며 입맛이 까다로워진 나의 흔치 않은 단골집이다. 그런 이유로 수없이 오가며 초계탕은 물론 온반, 만두, 닭 무침, 메밀전까지 대부분 메뉴도 두루 섭렵했다. 모두가 이정옥 사장이 직접 솜씨 부린 음식들로 진심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끌리는 맛, 누가 먹어도 싫다고 할 수 없는 맛’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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