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11] 고사리 시즌, 막이 오르다
[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11] 고사리 시즌, 막이 오르다
  • 김민수 여행작가
  • 승인 2024.04.16 13: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3월 잦은 비로 벚꽃은 늦고, 고사리는 일찍 땅 밖으로 나와
-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고사리밭 공유는 안해
- 마치 고기를 씹는 듯, 경쾌한 탄력을 주는 고사리육개장
4월 중순이면 제주에는 고사리철이 시작된다. 고사리는 제삿상에 올라가는 필수 음식이기도 하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4월 중순이면 제주에는 고사리철이 시작된다. 고사리는 제삿상에 올라가는 필수 음식이기도 하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이웃집 선자의 인스타그램에 벌써 산두릅과 고사리 피드가 올라왔다. ‘똑, 기가 막힌 소리다. 비는 추적였지만, 혹시나 하는 조급한 마음에 답사 겸 가 봤는데., 두릅도 고사리도 손맛을 보고야 말았다.’

4월 중순부터 5월 초, '똑' 소리가 나는 고사기 철

제주의 계절에는 루틴이 있다. 벚꽃이 모두 떨어지고 나무에 새잎이 돋을 무렵, 긴 비가 내린다. 바로 고사리 장마다. 사실 고사리 철은 이 비가 그치는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빠르다. 3월 내내 비가 잦았던 탓이다. 그러다 보니 벚꽃은 늦고 고사리는 일찍 땅 밖으로 나왔다.
고사리 따기는 부업으로도 쏠쏠하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 따기는 부업으로도 쏠쏠하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색이 검고 줄기가 두꺼운 먹고사리.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색이 검고 줄기가 두꺼운 먹고사리.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볕 좋은 곳에서 잘 말려야 상품성이 좋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볕 좋은 곳에서 잘 말려야 상품성이 좋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의 중산간은 한라산 자락의 해발 200~500m 지역을 일컫는다. 곶자왈과 들판, 오름이 분포돼있는 곳에서 고사리가 자라난다. 말 그대로 우후죽순, 고사리는 한자리에서 무려 8~9번 새순이 돋고 다시 자라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제주 고사리는 크게 먹고사리와 백고사리로 나뉜다. 특히 먹고사리는 한자로 궐채(蕨菜)라 부르며 나라에 진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빛에 키가 크고 줄기가 굵은 것이 특징이며 주로 숲이나 덤불 속에서 자란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고 충분한 습기가 유지되는 생육환경이 매년 봄 최상의 고사리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손끝을 살짝 댔을 때 ‘똑’하고 저절로 부러질 정도가 돼야 이상적인 채취 시점이라 말한다. 보고 따는 요령이 다소간 필요한 이유다. 백고사리의 백은 하얗다는 뜻이 아닌 볕(빛)의 의미다.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자라며 가늘고 연둣빛을 띠기 때문에 육지 고사리와 구별이 어렵다.

자신만 아는 고사리 하나씩 꿰차고 있는 제주민들

이맘때 서성로(서귀포에서 성산읍까지 이어진 도로)와 같은 중산간 길을 달리다 보면 도롯가에 주차된 차들을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 십중팔구 고사리를 따러 나선 사람들이 세워놓은 것이다. 제주민들은 나름 자신만 아는 고사리밭 하나씩은 꿰차고 있다. 그런 장소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결코, 알려주는 법이 없다.
채취한 고사리는 세척해서 가볍게 삶아내야 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채취한 고사리는 세척해서 가볍게 삶아내야 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민들은 나름 자신만 아는 고사리밭 하나씩은 꿰차고 있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민들은 나름 자신만 아는 고사리밭 하나씩은 꿰차고 있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와 숙주나물이 들어간 로컬식당의 고사리육개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와 숙주나물이 들어간 로컬식당의 고사리육개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볶아 상애떡에 넣어만든 버거.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볶아 상애떡에 넣어만든 버거.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사리 철에 제주행 항공권이 비싼 까닭도 이유가 있다. 고사리 관광객이라 불리는 이들이 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제주 고사리는 돈이 된다. 잘 말렸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팔면 여비는 충분히 건지고도 남는단다. 한편, 제주의 길 잃음 사고 중 약 40%가 고사리 철에 발생한다. 주로 연로하신 분들이 곶자왈 깊숙이 들어갔다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그래서 제주도소방안전본부에선 구호를 하나 만들었다. ’나 홀로 너무 멀리, 또 깊이 가지 말자‘ 제주 먹고사리는 맛이 좋다. 무침으로도 좋지만, 육개장으로는 더욱 더 각별하다. 필자의 외할머니는 고사리육개장을 즐겨 끓여주시곤 했다. 그 맛이 그리워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에 들렀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고사리의 식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마치 스프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외할머니의 육개장에 들어간 고사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마치 고기를 씹는 듯한 경쾌한 탄력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주산과 중국산의 차이다. 고사리육개장 역시 잔치 때 먹던 음식이다. 우선 돼지고기 육수에 잡고기와 불린 고사리를 넣어 끓인다. 이때 고기는 으깨고 고사리는 손으로 비벼 실같이 만드는데 그래야 내용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솥 전체에 골고루 퍼진단다. 여기에는 하객들 누구든 공평하게 고기와 고사리 맛을 보게 하려는 제주민들의 순박한 인심이 깔려있었다. 고사리육개장도 몸국과 같이 메밀 궁합이다. 이렇게 국물이 걸쭉해지면 베지근한 맛도 상승하며, 더욱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최근, 제주산 고사리를 사용한다는 식당 몇 곳에 다녀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바로 그 맛이 소환됐다. 결국, 고사리육개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솜씨보다는 재료였다. 그리고 이토록 맛있는 고사리육개장 또한 그냥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식당 주인들 역시 매년 봄, 제주의 산야로 나서는 고사리 헌터였던 것이다.

어설펐던 고사리 캐기, 지금은 팟지 물색 중

제주에서 맞은 첫봄은 정말 신기했다. 고사리 앞치마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고사리 앞치마는 아랫단에 지퍼가 달렸다. 고사리를 주머니에 담은 후 불룩해지면 지퍼를 열어 소쿠리 등에 쏟아붓기 위한 기능이다.
배추를 삶아 고사리와 함께 끓여내기도 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배추를 삶아 고사리와 함께 끓여내기도 한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우리 부부도 고사리를 캤다. 선무당의 자세로 용감하게 들판을 누비다 보니, 꽤 많은 양을 모았다. 보통 고사리는 한 번 삶은 후, 건조해서 보관해야 하지만, 바로 먹으려면 삶고 난 후에 하루쯤 물에 담가놔야 한다. 그런 절차를 생략했다가 대단히 쓴 맛을 본 것도 어설픈 첫봄의 기억이다.. 두 번째 봄부터 아내와 난 팟지로 사는 중이다. (팟지는 상품성이 없는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제주에서는 고사리 채집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고사리는 그냥 얻어먹기로 했다. 마음씨 좋은 이웃들이 팟지들을 그냥 내버려 둘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쯤 뒤에는 선자네 집도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 잘 마른 것으로 조금 가져와야겠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사리육개장을 한번 만들어 보라고 권해 볼 참이다. 풍요로운 냉장고보다는 입안의 즐거움이 우선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주 2024-04-18 19:55:29
고사리는 캐거나 따는 것이 아니고 꺾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