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춘천닭갈비는 닭고기 중에서도 닭가슴살과 닭다리를 매운 양념에 재워서 양배추, 당근, 깻잎, 고구마 등의 여러 가지 야채, 가래떡 등과 함께 철판에 구워먹거나 볶아 먹는 요리로 닭의 갈비뼈와는 관계가 없다.
춘천닭갈비는 서민의 음식으로 소주와 함께 서민의 애환을 달래던 음식 중 하나이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닭갈비를 볶으면서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함께 볶아 먹어버리는 묘미가 있다.
연탄불에 구워먹던 닭갈비
하지만 원조 춘천닭갈비는 지금의 형태가 아니었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춘천시 요선동 한 술집에서 술안주 삼아서 닭의 갈빗살을 양념에 재워서 연탄불에 구워먹었던 것이 시초였다.
강원도 일대 양계장에서 키웠던 닭이 춘천에서 도축되면서 닭고기는 수도권으로 나갔고, 닭갈비가 남으면서 그것을 구워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닭갈비가 1970년대 소양강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인부들이 닭갈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피곤을 닭갈비와 소주로 달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가가 춘천에 들어서면서 닭갈비의 수요가 더욱 증가하면서 닭갈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춘천닭갈비를 먹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던 대학가 상인들이 결국 닭가슴살과 닭다리에 양념을 하고 각종 채소를 넣어 볶기 시작했고, 그것을 춘천닭갈비로 부르기 시작했다.
소양강댐 건설 인부들이 먹던 닭갈비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태백 지역 탄광이 번창하면서 탄광 인부들이 두둑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구워먹기 시작했다.
이후 야채를 볶아 먹는 춘천닭갈비와 연탄불에 구워먹는 태백닭갈비로 나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에 의해 퍼진 춘천닭갈비
1980년대 서울과 춘천을 오가던 대학생들이 서울로 춘천닭갈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1980년대 춘천으로 MT를 가면서 닭갈비를 맛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서울로 전파하면서 대학가 주변으로 춘천닭갈비가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닭갈비가 유명해지면서 매운 양념이 중화되면서 치즈를 곁들여 먹는 형태가 됐다. 이런 이유로 서울 닭갈비와 춘천닭갈비는 매운 맛 양념의 차이가 있다.
춘천을 주로 기차를 통해 가야 했기 때문에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하철이 춘천까지 연결되면서 춘천을 방문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에 따라 덩달아 춘천닭갈비 가격이 상승하기에 이르면서 바가지 요금이 속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자정운동이 일어나면서 춘천닭갈비 가격이 많이 안정됐다는 평가다.
인부의 안주에서 대학생의 입맛으로
이처럼 닭갈비의 역사는 인부들의 입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학생들의 입맛에 의해 전국으로 퍼졌다.
초창기 춘천닭갈비는 실제 닭갈비를 연탄불로 구운 것이지만 대학생 입맛에 맞춰지면서 닭가슴살과 닭다리로 만들어지면서 닭갈비라는 명칭이 아닌 ‘닭불고기’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춘천닭갈비는 춘천의 현대사를 읽어내려가 갈 수 있는 음식이다. 197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했던 춘천과 대학가가 들어선 춘천 그리고 관광지로서의 춘천의 역사가 함께 하는 음식이 바로 춘천닭갈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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