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2월 24일 스티브 잡스 탄생
[역사속 오늘] 2월 24일 스티브 잡스 탄생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2.24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월 24일은 21세기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탄생한 날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인을 넘어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유비쿼터스 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갔지만 스마트폰을 스티브 잡스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즉, 기존부터 존재해왔던 IT기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서 인류의 삶을 바꾼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따라서 애플 매니아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구세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이다.

천재성 보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친부모는 결혼을 하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입양이 됐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였다. 양부인 폴은 스티브가 천재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 공부 자체도 많이 하지 않았고, 따라서 학업적으로 천재는 아니었다. 아이들과 노는 대신 차고에서 안 쓰는 부품으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휴렛팩커드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휴렉팩커드에서 여름 인턴으로 채용된다. 그곳에서 Apple을 같이 세운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난다. 인턴이 끝나자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 중퇴 후 많은 교양 수업을 청강했고, 이것이 훗날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Apple의 시작

1년 정도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다가 게임 회사에 게임 디자이너로 취직한다. 하지만 1년도 못 버티고 사표를 낸다. 이후 HP에 일하고 있던 워즈니악과 더불어 ‘손수 컴퓨터 만들기 클럽’에서 컴퓨터에 심취하게 되고, 워즈니악과 잡스는 의기투합해서 직접 컴퓨터 제작에 착수하게 되면서 1976년 Apple I이라는 PC를 롤 아웃한다. 이것이 꽤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돈을 안겨줬다. 이후 Apple II, Apple II Plus 등 후속 모델들이 차례로 성공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명성과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Apple II, Apple II Plus 이후로 애플은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Apple III는 망했고, 잡스는 GUI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Lisa 프로젝트와 Macintosh 프로젝트를 동시에 시작한다. 하지만 잡스로 인한 회사 내분이 일어나고, 이것이 스티브 잡스를 Apple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 회사가 악의적으로 선량한 잡스를 쫓아낸 것처럼 돼 있는데 사실 잡스가 자초한 부분이 많았다.

토이스토리 성공

쫓겨날 때 엔지니어 몇 명을 같이 데리고 나와 NeXT라는 회사를 차리고 워크스테이션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1986년에는 루카스필름에서 CG를 담당하고 있던 픽사를 인수했다. 초창기에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픽사를 인수했다. 그것은 오로지 자사 컴퓨터에 킬러 소프트로 탑재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창작팀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 후 “누구 작품이냐”고 물었고 대답을 듣자 창작팀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픽사는 토이라는 단편 3D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는데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면서 꾸준하게 투자를 했고, 결국 1995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가 큰 성공을 거뒀다. 토이 스토리는 그동안 스티브 잡스가 보여줬던 직접 경영 방향을 정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줄과 스폰서를 잡아준 후 개입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박을 거둔 것이다.

Apple로의 복귀

Apple은 잡스도 사라지고 워즈니악도 사라지면서 겨우 연명하는 ‘썩은 사과’가 됐다. 이에 Apple은 잡스를 다시 경영 고문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결정했다. 1997년 잡스가 Apple로 돌아왔을 때는 무려 1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빌 게이츠는 잡스가 Apple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실수’이며 ‘후회’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잡스는 Apple로 돌아와 제품의 종류를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한 기타 사업에서 손을 뗐고, 직원 3천명을 해고했다. 그 덕분에 1년 만에 3억달러 흑자를 이뤄내는 기적을 해냈다. 그리고 2000년 CEO로 완전히 복귀했다. 2001년 잡스는 iPod을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MP3 플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에 큰 호응은 없었다. 그 이유는 맥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반 컴퓨터에서 사용도 가능하게 되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2004년 8월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곧바로 iPhone 출시를 하면서 대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휴대폰, mp3플레이어, 인터넷을 하나로 합친 편리하고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물론 기존에도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아이폰은 혁신적인 제품이었고, 그것은 유비쿼터스 시대를 여는 제품이었다. 스마트폰은 아이폰 전과 아이폰 후로 나눌 정도로 아이폰의 출시는 스마트폰의 역사를 바꿨고, 그것은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건강이 악화됐고, 2011년 10월 5일 56세의 일기로 사망을 한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기업인 신분으로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은 사람이 아니라 21세기 혁신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까탈스럽고, 자기중심적 성격 때문에 비판을 받는 요소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