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화폐’로 물가 관리, 과거에는
상평창의 기능
상평창은 흉년에 쌀 가격이 올라가면 쌀을 시중에 싸게 내다 팔아 쌀 가격을 떨어뜨리고, 풍년에 쌀 가격이 하락하면 시중에 쌀을 비싼 값에 사들여 시중에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상평창이 처음으로 실시된 것은 고려시대인 993년으로 이때 금 1천냥을 기금으로 시작했고, 개경과 서경 및 12목에 설치됐다. 그런데 중간에 폐지됐다가 1208년(충선왕 즉위) 3월에 상평창을 모방해 전농사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는 1409년(태종 9) 전라도 관찰사 윤향이 면포 500필로 상평보를 설치했으며, 가을에 곡가가 내리면 포 1필을 2두씩 감해 곡식을 사들이고, 봄에 곡가가 오르면 포 1필에 2두를 더해 곡식을 판매했다. 그러다가 1445년(세종 27)에는 곡가가 폭등하면서 도시주민들의 생활에 큰 위협을 주자 상평법을 실시하고 의창곡 1천석을 기본 삼아 충청도·전라도·경상도 3도에서 시험 삼아 포와 곡물의 교환을 시작하게 했다. 이어 1451년(문종 1) 새로 사창법을 정하면서, ‘경국대전’에 서울과 지방에 상평창을 설치하고 곡식이 귀하면 값을 올려 포를 사들이고, 곡식이 천하면 값을 감해 포를 판매한다고 규정했다. 상평창은 본래 목적인 물가조절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능과 역할이 왜곡·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발달되면서 상평창 제도를 별도로 두지 않았고, 진휼청에서 흉년에 진휼미를 내다 파는 사례가 빈번했다. 하지만 19세기 세도정치 시절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감사와 수령들이 중간이윤을 착복하기 위해 곡가가 낮은 고을에서 곡식을 사서 곡가가 비산 고을에 판매하는 것이 널리 행해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