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2월 25일 햇볕정책 발표
[역사속 오늘리뷰] 2월 25일 햇볕정책 발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2.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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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월 25일은 역대 대통령 취임일이다. 그 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을 하면서 햇볕정책을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김대중 정부아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에 협력과 지원을 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을 목적으로 한다. 정식 명칙은 대북화해협력정책이다. 이는 이솝우화에서 거센 바람이 외투를 벗긴 것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외투를 벗긴 것이라는 일화에서 나온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이는 1970년대 서독의 동방 정책에 기초하고 있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해 통일 독일을 이뤄낸 것처럼 햇볕 정책을 통해 통일 한국을 이뤄내겠다는 두 전직 대통령의 꿈이 담겨있다.

선평화 후통일

이전에는 북한과 형식적이고 교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군사적 대치관계를 가졌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선평화 후통일을 내세우면서 교류를 기반으로 한 화해화 협력 등을 강조한 포용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중소기업들의 개선공단 조성 등이 있었다. 다만 햇볕정책 실시 중에도 북한은 연평해전 등 무력 도발을 감행하고 계속된 핵 위협이 있었다.

클린턴 정부와 궤 같이해

김대중 정부는 미국에서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클린턴 정부가 대북 문제에 있어 북한과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자 김대중 정부가 곧바로 햇볕정책을 발표했다. 다만 초창기 햇볕정책을 발표했지만 북한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1998년 11월 우리 국민은 금강산 관광에 나서게 됐고, 2000년 3월 10일 ’베를린 선언‘이 나오면서 화해 협력 분위기가 싹텄다. 2000년 6월 13일에서 6월 15일까지 최초로 남북한의 지도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햇볕정책에 북한이 응하게 된 것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와 화해 교류를 하면서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다만 햇볕정책의 부작용으로 대북송금 특검이 실시됐고, 특검은 현대가 4억 5,000만 달러를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북에 지원했으며, 이 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금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햇볕정책은 IMF로 힘든 시기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외국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한반도 평화 위협이 걸림돌이 됐었다. 그런데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위기 상황이 안정화 되면서 그에 따른 외국인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IMF를 빠르게 졸업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크게 동요해왔다. 2013년 북한이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되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위협했고,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6조원이 증발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북한 경제 잠식을 막아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햇볕정책이 끝나자 북한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북한 무력도발 등

다만 햇볕정책이 실시되는 가운데에서도 북한은 무력 도발을 계속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연평해전이다. 이와 더불어 햇볕정책 동안에도 핵개발을 하면서 보수 정당은 햇볕정책은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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