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초 우편제도는 페르시아
이에 BC6세기 키루스 왕이 지배하는 페르시아 제국이 역참을 이용한 우편제도를 시행했는데 이것을 로마가 받아들였다. 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빠른 통신체제가 필요했고, 로마는 ‘쿠르수스 부플리쿠스(cursus publicus)’를 만들었다. 로마 제국의 거대한 도로망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해 놓은 중계역참제도이다. 로마 제국 시대 전령들의 우편배달속도는 하루동안 270km를 달렸다고 하니 19세기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까지 어떤 나라의 우편제도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붕괴됐지만 ‘쿠르수스 부플리쿠스’는 와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봉건시대 들어오면서 점차 로마의 도로가 파괴되고, 봉건영주들은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면서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자연스럽게 ‘쿠르수스 부플리쿠스’는 와해됐다.근대적 우편제도 확립한 탁시스가(家)
봉건시대의 봉건영주는 중앙집권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서 우편제도는 필요가 없었다. 왕은 봉건영주와 빈번한 접촉을 원했지만 봉건영주는 왕과의 접촉을 하지 않기를 원했기 Eoanns이다. 이런 이유로 왕과 봉건영주는 자신들만의 우편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독자적인 전령단을 설치했다. 그러나 중세말 상인조합인 길드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우편제도가 필요했다. 그것은 길드와 고객들을 교류하는 방식이었다. 이탈리아 상인조합은 자신들만의 우편 제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편제도가 발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봉건시대를 지나면서 점차 지역과 지역의 교류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우편제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민간우편기업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 밀라노 부근 탁시스(TAXIS)가(家)가 걸립한 우편제도이다. 탁시스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을 받아 제국의 속령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우편망을 조직했다. 고대 로마 이후 무너진 우편 제도를 사실상 세워서 근대 개념의 우편제도를 만든 민간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마차를 아름다운 황색 페인트칠을 하고 마부에게 화려한 제복을 입게 했다. 그리고 포스트 여관에서 다른 포스트 여관으로 우편을 배달했다. 일설에 의하면 탁시스가가 운영하는 황금마차에서 ‘택시’의 어원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이다. 어쨌든 탁시스가가 운영하는 우편제도는 2만명의 배달원을 두고 신속하게 우편 중계를 했다. 그만큼 중앙집권 국가가 되면서 탁시스가의 우편제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우편제도가 막대한 사업이라는 것을 감지한 중앙집권 국가의 왕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루이 11세는 1477년 왕실우편국을 설립하고 230명의 기마배달원을 고용했고, 영국은 헨리 8세가 우편업무를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왕실을 위한 우편제도였지만 점차 막대한 재정수입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서 민간을 위한 서비스도 시행하게 됐다. 그러면서 점차 독점화됐고, 민간기업의 우편제도 서비스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로랜드 힐의 우편 개혁
하지만 여전히 우편이 너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1837년 영국의 교육가이자 세금개혁가인 로랜드 힐은 ‘우체국 개혁 : 그 중요성과 실용성 Post Office Reform : Its Importance and Practicability〉’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해당 책에서는 수송요금은 편지 1통을 취급하는데 소요되는 총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거리를 기준으로 한 복잡한 요금체계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거리에 관계없이 일정비율의 요금과 지불방법으로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우표를 붙이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즉 과거에는 거리별로 요금을 지불했지만 이제는 무게별로 요금을 차등 지불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우표를 붙이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힐의 개혁은 우편제도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리고 우편제도는 곧바로 민간의 통신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이와 더불어 철도와 증기선 등의 운송수단이 나타나면서 우편제도는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됐다.만국우편연합 창설
증기선과 철도가 나타나면서 국제무역이 팽창하게 되면서 국제우편의 수요가 증대하게 됐다. 과거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우편제도가 발달했지만 이제는 신대륙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를 다루는 우편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나라별로 우편제도가 다르게 되면서 국제우편제도는 크게 저해가 됐다. 이에 1863년 5월, 미국 체신장관의 제안에 따라 15개 유럽 국가와 미국의 체신부 대표들이 파리 우편회의를 소집하여 1단계의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1874년 9월 15일 베를린에서 22개국(이집트와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유럽 제국)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우편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총우편연합(General Postal Union)의 설립을 명시한 조약이 체결되었고, 1875년 7월 1일 마침내 총우편연합이 정식으로 발족됐다. 총우편연합은 1878년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UPU)으로 개칭됐고, 기본조약도 만국우편협약으로 명칭이 변경됐다.항공우편의 발달, 전자우편의 등장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공기가 나타났고, 과거 증기선과 철도에 의존했던 우편제도는 이제 항공우편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20세기 말에는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전자우편 즉 이메일이 나오게 됐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SNS를 통해 서신을 주고받는 시대가 도래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