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우리나라에서 여성가족부의 탄생에는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정부 수립하면서 여성 정책을 사회부에서 맡았다. 사회부에서는 부녀국을 두고 부녀의 문제를 관리했다. 이후 1955년 보건사회부로 소속이 바뀌었고, 1963년 부녀아동국으로 확대됐다. 1981년 가정보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범위를 확대했고, 1994년 보건복지부로 조직의 개편을 단핸했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기존 정부제2장관실을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성단체 등에서 여성부 신설에 대한 목소리를 냈고, 대통령 역시 여성부 신설은 역사의 히름이라면서 여성부 신설 의지를 밝혔다. 이후 2001년 1월 여성특별위원회를 여성부로 개편했고, 초대 장관에 여성운동가인 한명숙 전 장관을 내정했다. 초기 여성부는 1국 3실 직원 102명, 예산 300억원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보육 문제를 여성부로 이관했고,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2005년 1월에는 장하진이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보육 정책의 장기발전 계획을 마련했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여성부를 비롯한 5개 부처를 폐지하고자 했으나 합의 끝에 통일부와 여성부는 존치시키기로 했다.문재인 정부 때 폐지 논란
박근혜 정부 때는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안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여성가족부의 폐지 논란이 계속 이어졌다. 2020년 7월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이 10만명이 넘는 등 여성가족부의 기능에 대한 국민적 회의감이 넘쳐 흘러났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면서 여가부 폐지가 과연 현실화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그동안 해왔던 일
여가부는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고,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양성평등을 위해 일해왔다. 대표적으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했다. 또한 성매매 여성 재활에 힘을 썼다. 그리고 2008년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냈으며, 여성 탈북자 인권보호, 성범죄자 알림e,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가ㅈ어 및 아동·청소년 보호 정책, 음란물 단속, 청소년 유해사이트 차단, 셧다운제, 금연운동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부 폐지를 언급한 것은 양성 평등을 넘어 혐오를 조장한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리퐁 논란 등 여가부가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넘어 남녀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남녀 평등과 화합을 위해 오히려 여가부 폐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여가부가 실제로 여성의 인권 향상에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여가부 폐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여가부가 폐지되기에는 아직도 양성 평등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