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교역의 필요성
그 해답은 교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당시 해외와 교역한 기록들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서라벌 시장에는 외국인들 특히 아라비아 상인들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시대 때에는 쌍화점이라는 고려가요가 있는데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 여인에게 추근댄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양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교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웃나라가 전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기 때문이다.중국 인접 국가라서
앵거스 매디슨의 ‘매디슨 프로젝트’에 따르면 서기 1000년 중국의 인구는 5천900만명으로 유럽 30개국을 합친 것(2천556만명) 보다 많다. 1990년 물가를 기준으로 GDP 규모를 환산하면 중국은 274억달러이고, 유럽 30개국은 109억 달러이다. 1500년에도 중국은 618억달러, 유럽 30개국은 441억달러이다. 명나라는 인력과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교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는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나라는 북방 오랑캐 침입에 대비를 해야 했고, 이는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해양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왜)이 있었지만 주로 북방 오랑캐 침입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해양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본은 전국시대를 맞이해서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물론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일본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교역의 필요성을 느낀 유럽
반면 유럽은 교역의 필요성을 느꼈다. 유럽만으로는 생산과 소비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유럽 귀족들에게 인기 있는 후추를 유럽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인도로 항해를 해야 했다. 당시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육로와 해로가 있었는데 육로는 아랍국가들에 의해 막히게 되면서 항해를 통해 인도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항해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넓은 바다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항해술과 총과 대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군대를 배치할 수 없기 때문에 칼이나 화살 대신 총이나 대포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수소 인원으로 대군을 만나 승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했다. 그것이 결국 항해술의 발달로 이어지고, 해양 국가로 나갈 수 있었고, 신대륙 발견을 할 수 있었다. 반면 동양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는 굳이 해양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체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