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파천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것’을 말한다.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을 의미한다. 즉, 러시아 공사관으로 임금이 도피를 한 사건을 말한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다음해 2월 25일까지 고종과 왕태자 순종이 아라사(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이다. 당시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과 친일내각이 장악한 경복궁을 탈출해 어가를 아라사 공사관으로 옮긴 것을 말한다. 을미사변으로 인해 민비(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면서 일본은 칼로 경복궁을 위협했다. 고종도 자신의 신변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경복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경복궁 탈출 첫 시도는 1895년 11월 29일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위대장 이진호의 밀고로 실패했다. 당시 영국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러시아 대사인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도의 도움으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1896년 2월 2일 니콜라이 2세가 조선 왕실 보호를 위한 러시아 해군 파견을 승인하면서 인천항에 어드미럴 코를닐로프 호가 입항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수병이 공사관 경비를 강화했다. 이에 보부상, 러시아 해군의 호위 하에 고종과 순종은 아라사 공사관으로 이어를 성공했다.친일내각 붕괴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피신을 하자 당일 내각 총리 대신인 김홍집, 외부대신 김윤식, 내부대신 유길준, 탁지부 대신 어윤중, 군부 대신 조희연, 법무 대신 장발 등등이 면직됐다. 이때 김홍집, 어윤중, 정병하가 순검 혹은 군중에게 살해되고 유길준 등은 망명했다. 일본은 러시아 공사관을 찾아가 사태 수습과 환궁을 요구했지만 실패를 하면서 조선에서의 일본 영향력이 급감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에 민영환을 특사로 파견했다.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조선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독립협회에서는 고종에게 아리사 공사관에서 경복궁으로 환궁할 것을 요구했고, 고종은 환궁한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가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