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의 범람, 그리고 쌓아올린 민보(民洑)
민보(民洑)는 민간이 쌓아올린 물막이 둑(보)이다. 호남평야는 홍수가 나면 범람을 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관이 나서기 전에 민간이 나서서 물막이 둑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동진강 어느 곳에 누군가가 민보를 쌓아 올렸다. 그것은 관에서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고, 그 민보 때문에 만경평야는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고부군수 조병갑이 임명되면서 관에서 물막이 둑을 쌓는다면서 대대적으로 농민들을 동원했다. 이미 물막이 둑이 있는데 왜 또 둑을 쌓아야 하냐면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고부군수 조병갑은 초반에 물세를 걷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과 다르게 추수 때 억지로 물세를 걷었다. 정봉준이 조병갑의 다섯가지 만행을 폭로했는데 첫째, 민보(民洑) 아래 또다시 보를 쌓고 강제로 민간에 지시를 내려서 좋은 논[상답(上畓)]은 한 마지기에 2말의 세를 거두고, 나쁜 논[하답(下畓)]은 한 마지기에 1말의 세를 거두어 모두 700여 석을 거둔 일. 둘째, 진황지(陳荒地)를 백성에게 갈아먹게 하고 관가에서 징세하지 않는다는 문서를 주고 나서도, 추수 때가 되면 억지로 세금을 거둔 일. 셋째, 부민(利民)의 돈 2만여 량을 강제로 빼앗은 일. 넷째, 태인현감을 지냈던 고부군수 아버지의 비각을 세운다며 천여 량의 돈을 거둔 일. 다섯째, 대동미를 민간에서 징수할 때는 좋은 쌀[정백미(精白米)] 16말씩 거두고는 상납할 때는 나쁜 쌀[추미(麤米)] 사서 이득을 남겨먹은 일.보세 가렴주구의 첫머리
이같이 보세가 가렴주구의 첫머리에 등장할 정도로 물막이 댐은 만경평야에서 민감한 이슈이다. 지대가 워낙 범람하다보니 민간이 물막이 둑을 쌓아올렸는데 조병갑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보를 억지로 쌓아서 물세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탐관오리인 조병갑은 왜 고부군수를 노렸을까. 당시는 매관매직이 유행을 했다. 돈을 주면 관직도 살 수 있었다. 조선시대는 ‘쌀’이 곧 ‘화폐’였다. 조선시대 쌀 생산량의 40%는 호남평야가 담당했다. 그리고 그 중 만경평야가 엄청난 수확을 했다. 동진강을 따라 펼쳐진 넓은 평야에서는 쌀이 생산되고 바로 옆에는 해안에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고부군수로 부임한다면 3년 안에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뀐다는 소문이 돌 수밖에 없었다. 이에 탐관오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책이 바로 ‘고부군수’였다. 고부군수는 탐관오리들의 ‘엘도라도(황금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조병갑은 엄청난 수탈을 했고, 이에 폭발한 농민들에 의해 결국 고부민란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은 만석보이고, 현재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