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추진했지만
전두환 정권이 12.12 군사 쿠데타와 5.17 쿠데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학살을 통해 탄생했다. 그리고 폭압적인 군부독재가 이어져왔다. 그러던 중 1985년 12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선전하면서 야당 돌풍이 불었고, 이후 대통령 직선게 개헌 요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신민당은 1천만 개헌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에 1986년 7월 30일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신민당의 합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됐다. 하지만 여당인 민정당은 자신의 정권 연장을 위해 내각제 개헌을 주장했지만 신민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주화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전두환의 입장에서 직선제 개헌을 하게 된다면 야당에게 모든 권력이 넘어가고, 그로 인해 퇴임 이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면서 결국 호헌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체육관 선거 그대로 유지
이날 전두환씨가 발표한 내용은 결국 체육관 선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체육관 선거는 통일주체국민회의 주관 하에 장충체육관에서 대선을 그들만으로 치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느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내세워 유신헌법을 선포했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한다는 것이 바로 체육관 선거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위원 역시 그들만의 리그로 선출되기 때문에 체육관 선거를 한다는 것은 대선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전두환씨가 1987년 4월 13일 4.13 호헌조치를 통해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권연장을 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국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도입이라는 카드를 내걸었지만 국민적 저항에 곧 부딪히게 된다.6월 항쟁의 들불이 되어
대통령 직선제를 버리고 체육관 선거를 또 치르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분노한 국민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가뜩이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는데 4.13 호헌조치라는 라이터로 불을 당긴 것이다. 국민은 전두환씨와 더 이상 협상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이에 야당과 재야 민주화 운동세력, 학생운동권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말들었고, 전국 16개 도시에서 일제히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6.10 범국민대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경찰은 범국본 집행부를 모두 체포했지만 넥타이 부대의 거리 시위는 막지 못했다. 가뜩이나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직선제 개헌에 불을 더욱 당기게 만들었다.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고,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다는 6.29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87년 체제, 이제는
이로 인해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고, 그해 대선이 치러졌지만 결국 노태우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22년이 됐다. 정치권이나 헌법학자들은 87년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과도한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을 분산해야 하는 등 권력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한 다원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헌법 그릇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