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바퀴의 발명
[역사속 경제리뷰] 바퀴의 발명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4.2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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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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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바퀴란 원형 틀에 축을 달아 회전할 수 있게 만든 도구를 말한다. 이 바퀴의 발명은 인류의 서장과 발전을 가져온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라는 별명까지 있다.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모방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물건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무거운 짐을 먼 곳까지 손쉽게 운반할 수 있게 만든 것이고, 인류를 먼 곳까지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한 발명품이기도 하다.

물레에서 시작한 바퀴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바퀴는 기원전 4천년 경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까지는 탈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이 사용하는 물레 형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울퉁불퉁해서 도저히 탈 것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탈 것으로 사용된 것은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였는데 유사한 시기에 인도와 중국에서도 탈 것으로 바퀴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 최초의 바퀴는 통나무를 원반 모양으로 잘라내어 다음은 다음 3개의 널빤지를 서로 결합시킨 형태이다. 기원전 2천년경에야 바퀴살이 달린 바퀴가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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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이런 바퀴는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전차(戰車)가 됐다. 중국, 중동, 인도 이집트 등에서 사용했던 인류 최초 기동병기였다. 전차는 동물이 끄는 수레를 개량해서 전투용으로 사용했다. 말 2~4마리가 끄는 형태로 되면서 4마리의 경우 1명은 마무이고, 나머지는 활이나 창 등의 병기를 사용했다. 로마가 유럽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차 부대의 활약 때문이다. 그만큼 바퀴 달린 전차부대의 무기는 강력했다. 하지만 전차부대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수적이다. 로마가 못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도로에 집착했던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세시대는 쇠퇴의 길로

그렇기 때문에 중세시대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동양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는 걸어다니는 것이 가장 저렴했고, 효과적이었다. 바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했는데 로마나 중국 진시황은 도로를 전국적으로 깔았다.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악지대가 워낙 많기 때문에 도시 중심 아니면 수레를 끄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돈 없는 백성들은 주로 도보를 이용했고, 우리나라는 보부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이나 중국 역시 수레바퀴를 이용하기 보다는 주로 말이나 도보를 이용했다. 중세시대는 기사가 창을 들고 돌격하는 방식의 전쟁을 치렀고, 동양에서도 주로 창이나 칼 그리고 화살 위주의 전쟁을 해야 했다.
사진=픽사베이

대포의 발명, 마차의 발달

그러던 것이 중세시대를 지나 중앙집권화가 되면서 점차 수레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대포가 발명되면서 대포의 화력을 실감하면서 무거운 대포를 이동시켜야 하면서 수레바퀴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로가 정비되고, 그로 인해 바퀴를 이용한 대포의 이동은 영토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도로가 정비가 되면서 마차가 발달하고, 이동이 쉬우면서 빠르게 되면서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늘어나고, 물자의 교류가 활발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빨리 진행됐다. 바퀴는 불, 문자와 더불어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꼽는 이유는 장거리 이동과 대규모 물자 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동력기관이 등장하면서 바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동안에는 동물이 이끌었지만 이제는 동력기관이 바퀴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빠르면서 손쉽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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