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5월 9일 동양방송 첫 라디오 전파 쏘다
[역사속 오늘] 5월 9일 동양방송 첫 라디오 전파 쏘다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5.09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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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동양방송이 폐국하는 1980년 11월 30일 오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방송되었던 TBC 동양방송의 마지막 프로그램.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TBC 동양방송이 폐국하는 1980년 11월 30일 오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방송되었던 TBC 동양방송의 마지막 프로그램.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64년 5월 9일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세운 동양방송이 AM 라디오 전파를 처음 쏘아올린 날이다. 개국 당시 주파수는 1380㎑였다. 동양방송은 (주)중앙일보·동양방송 방송부문의 통칭으로 민영방송의 선두주자였다. 1980년 11월 30일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으로 KBS 2TV로 바뀌면서 폐국됐다. 1970년대 드라마 왕국이었다는 평가도 있었고, 삼성의 홍보 창구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이어갔다. 이에 신민당사 경찰 진입사건, 김대중 기자회견 단독 생중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상황을 보도하려는 등 종론직필을 노력했던 방송사였다.
이런 이유로 정권에 밉보여 전국 방송이 되지 못하고 수도권, 부산 및 일부 동남권이 주 시청권역이었다. 당시 봉두완 앵커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박정희 정권에 밉보였던 방송사였다. 이런 이유로 전국단위 송출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박정희 정권이 거부를 햇다.

정치 하려고 했다가

이병철 창업주가 동양방송을 개국한 이유는 당시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아니다 싶어서 언론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에 김규환이 설립한 RSB 라디오서울과 김용우가 설립한 DTV를 인수해 TBC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1965년 만들어진 회사가 중앙일보이다. RSB라디오서울로 개국했고, 1964년 5월 9일 정오부터 전파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1964년 12월 7일 DTV라는 이름으로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1965년 8월 3일 방송국 이름을 JBS로 바꾸고 1965년 12월 7일 중앙일보와 함께 중앙매스컴센터로 입주한다. 라디오방송과 텔레비전이 독립해 운영했지만 점차 커지면서 합병됐고, 1966년 7월 1일 TBC 동양방송 이름으로 바꾸게 됐다. 당시 TV는 사치품이기 때문에 마을에 1대가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TBC 개국 당시 광고 수입이 많지 않아서 운영에 한계가 있었다.
TBC 동양방송 폐국 알린 방송.
TBC 동양방송 폐국 알린 방송.

사카린 밀수 사건 발생

하지만 삼성이라는 막강한 자본을 이용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 종합편성 시행, 해외 프로그램의 과감한 도입 및 방영 등을 했다. 당시 드라마는 생방송으로 진행됐는데 TBC에서 최초로 녹화 장비를 들여와서 국내 첫 녹화 드라마가 제작됐다. 물론 당시 편집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생방송처럼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했다. 이에 일일연속극을 제작했지만 첫 작품만 찍고 그만뒀다고 한다. 동양방송이 시련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카린 밀수 사건이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해 삼성그룹이 큰 타격을 입게 됐고,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은 창업주 구하기에 나섰다. 다른 언론사들이 삼성그룹과 이병철 창업주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반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은 옹호하기 급급했다. 이런 이유로 동양방송이 크게 밀리게 됐다.

쇼쇼쇼로 분위기 전환

하지만 동양방송이 개국 초기부터 쏟아부었던 것이 있다. 바로 ‘쇼쇼쇼’이다. 당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쇼쇼쇼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하기 충분했다. 동양방송의 ‘쇼쇼쇼’를 계기로 다른 방송국에서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선발주자가 ‘쇼쇼쇼’이다. 또한 당시 최고 대우를 하면서 인력 스카우트를 했다. 당시 전속가수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당대 인기 가수들을 많이 스카우트를 했다.

1970년대 방송가 주름 잡아

동양방송에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69년 MBC TV가 개국되면서이다. 이때 드라마 PD들이 MBC로 대거 유입됐다. 이에 TBC의 전략은 KBS PD를 대거 스카우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작한 드라마가 ‘아씨’이다. ‘아씨’ 드라마는 시청률 70%로 초대박을 쳤다. 아씨 드라마는 최초로 100회를 넘긴 연속극이다. 아씨를 계기로 TBC는 드라마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당시 외화 프로그램도 방영했는데 날으는 원더우면, 아내는 요술쟁이, 두 얼굴의 사나이, 600만불의 사나이 등이었다. 만화영화로는 황금박쥐, 요괴인간, 우주소년 아톰, 짱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독수리 오형제, 딱따구리 등이 방영됐다.
TBC 동양방송이 폐국하는 1980년 11월 30일 오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방송되었던 TBC 동양방송의 마지막 프로그램.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에서 눈물을 흘린 가수 이은하.
TBC 동양방송이 폐국하는 1980년 11월 30일 오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방송되었던 TBC 동양방송의 마지막 프로그램.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에서 눈물을 흘린 가수 이은하.

언론통폐합으로

1980년 방송계는 그야말로 동양방송 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컬러TV 방송 시대를 시작하면서 동양방송 역시 컬러TV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결국 폐국이 됐다. 폐국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1979년 YH사건 당시 타 방송사가 방송하지 않을 때 TBC는 경찰이 신민당사 강제진압 현장을 뉴스에 몇 초간이라도 송출했다. 또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상황에 대해서도 그대로 전하려고 했었다. 1980년 11월 전격 시행된 언론통폐합에 따라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동양방송은 KBS로 흡수통합되면서 17년간의 방송국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11월 12일 보안사에 끌려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홍진기 중앙매스컴 회장은 2층 조사실에서 수사관의 강압에 따라 자필로 포기각서를 쓰고 TBC를 내놓아 버렸다. 결국 고별방송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방송했는데 당시 진행자나 출연자들 모두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가수 이은하는 자신의 히트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불렀는데 노래 도중 대성통곡을 하면서 신군부에게 찍혀 3개월 방송 출연금지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코미디언 최용순과 전속 탤런트였던 강부자씨 역시 우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되면서 KBS 프로그램에 한동안 출연을 하지 못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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