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호칭은 대통령 전유물은 아니야
사실 영부인의 호칭은 대통령 전유물은 아니다. 영부인(令妻子)은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부인 하니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말인 영부인(領妻子)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영부인(令妻子)이다. 영(令)은 중국에서 1만호(戶) 이상의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장관의 벼슬 이름이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장관급 벼슬을 하는 사람, 고려시대에는 과장(課長)급인 종5품 이하의 벼슬 이름을 말한다. 그러다가 남을 높여 지칭할 때 영(令)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의 딸을 영애(令愛)라고 부르기도 하고, 남의 아들을 영식(令息)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남의 부인을 높혀 영부인이라고 부른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영부인(令太太)이라는 호칭이 흔하게 사용한 호칭이었다. 실제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영부인이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한 사례가 많이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영부인을 ‘대통령 부인’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를 지칭하기도 했지만 이때까지 기사를 검색해도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도 간간히 보였다. 이승만 정권 때에도 프란체스카 여사도 그냥 ‘프란체스카 여사’로 불렀지 영부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빈번해진 것은 전두환 때부터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아예 못을 박은 사례는 박정희 때부터이다. 당시 검색을 살펴보면 초반에는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간간이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아예 육영수 여사를 부르는 호칭으로 굳어졌다. 다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비교하면 박정희 정권 때 육영수 여사를 영부인으로 부르는 기사의 검색량이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육영수 여사가 조용한 행보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1974년 8월 15일 사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 당시 영부인에 대한 기사 검색량이 그리 많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사 검색량이 갑자기 높아진 때가 있었다. 바로 전두환 정권 때이다. 실제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영부인’으로 검색하면 1981년 1천159건으로 집계된다. 이는 1979년 88건, 1980년 387건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1982년에도 600건 정도 됐고, 그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면서 1987년 노태우 정권 들어서면서 영부인이라는 호칭이 급격히 감소한다. 즉, 영부인이라는 호칭을 박정희 정권 때 육영수 여사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사용했지만 기사 검색량으로 압도한 것은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 때이다.폐하·전하·합하·각하는
참고적으로 과거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 각하는 폐하, 전하, 합하 다음의 순위를 의미한다.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父皇)는 궁전의 계단(陛) 아래에서 우러러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전(殿)을 의미하는데 왕이 업무를 보는 궁궐을 전(殿)이라고 불렀다. 즉 왕이 업무를 보는 궁궐 아래에서 우러러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들이 사는 집(閤) 아래에서 우러러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들이 사는 집(閣) 아래에서 우러러 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본 메이지 시대에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불렀고, 이승만 정부에서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들어서 각하는 대통령만 부르는 고유의 호칭이 됐다. 노태우 정부 들어서 ‘각하’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게 했고, 김영삼 정부는 공식석상에서 금지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