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인, 가슴 드러내다
서양 사진작가들의 작품 등을 보면 1910년대 여성들을 살펴보면 가슴을 드러낸 채 사진에 찍힌 것이 있다. 또한 과거 어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이 다반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조선 여인들은 가슴을 드러내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양반가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로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었고, 서양인들도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계층은 가난하거나 천민’이라고 기록했다. 가난하거나 천민 계층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보이는 패션을 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남아선호 사상 때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아선호 사상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 말기에 아들을 낳은 여자와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의 대우는 엄청났다. 이런 이유로 조선 말기에 아들을 낳으면 가슴을 내놓으면서 득남을 자랑하는 풍습이 있었다. 가슴을 드러낸 여성은 주로 결혼한 여성이었고, 득남한 여성이었다. 처녀가 가슴을 드러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또 다른 이유는 짧은 저고리 때문에 불가피하게 노출됐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의 저고리는 허리를 덮고 엉덩이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짧은 저고리로 변화했다. 짧은 저고리로 변화를 하면서 대신 치마가 가슴을 덮는 형태로 변화를 하기 시작했다. 즉 치마 길이가 점차 위로 올라오면서 가슴을 덮는 형태로 변화를 한 것이다. 문제는 치마가 가슴을 덮는 형태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여성의 경우 유방 압박으로 인한 유통증에 시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가슴 노출이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아울러 가난한 여성들이나 천민 여성들은 물동이를 이고 다니거나 머리에 물건을 올려놓고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고, 그러다보면 만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저고리는 위로 올라가고, 치마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가슴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일본의 조작?
일설에 의하면 일본이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 상황을 해외에 알릴 때 서양시각에서 ‘비문명화’된 모습을 촬영해서 선보였다는 점이다. 당시 사진에는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게으른 남성들, 기생들, 총살당하는 의병들, 목에 칼을 쓰고 있는 죄수들 등이 있는데 조작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진들이라는 것이 최근의 분석이다. 따라서 가슴 노출도 일본이 여성들을 돈을 주고 섭외해서 서양 사진작가들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해외에 알리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일본이 사진을 조작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진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조작설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