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한 미국 책임론 대두
서울 미 문화원 점거사건
이런 상황 속에서 1985년 5월 23일 삼민특위 주도로 서울 소재 5개 대학 남녀 학생 73명이 현재의 서울특별시청 을지로청사 자리에 있던 서울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했다. 미문화원 도서관에서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미문화원을 점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치외법권 지역이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의 공권력이 투입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문화원을 대학생들이 점거했을 때 전두환 정권은 좌불안석이었지만 공권력 투입을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결국 72시간만인 5월 26일 자진해산하고 연행됐다. 이에 경찰은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 신정훈 등 25명을 구속했다. 김민석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도 같이 재판을 받았았으며, 고진화 전 의원은 외부 연계세력이라는 이유로 수배 후 구속됐다.86세대의 탄생
이날 미 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인해 전두환은 학생 시위에 대해 손을 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당시 허문도는 ‘학원안정법’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은 학원소요와 관련된 문제 학생을 대상으로 6개월 이내 선도교육 실시, 반국가단체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 또는 교육하거나 그 사상이나 이념이 표현된 문서·도서·기타 표현물을 제작·인쇄·수입·복사·소지·운반·배포·판매 또는 취득하여 학원소요를 선동·조장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등을 담았다. 일종의 삼청교육대 학원 버전인 셈이다. 그러나 학원안정법이 공개되면서 신한민주당은 즉각 성명을 냈고, 입법 반대를 했다. 또한 재야세력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학원안정법 철회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고 여당인 민정당 내부에서도 학원안정법은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전두환은 8월 17일 입법 보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사실상 학원안정법 입법을 철회했다. 그러면서 학생시위가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받게 됐고, 이후 86세대가 탄생하게 됐다.미국 책임론 과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책임론은 계속해서 꾸준하게 제기됐었다. 미국 정부는 1988년 국회 광주특위가 열렸을 때에도 성명서를 보냈다. 성명서에는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즉, 해당 기간 동안 광주에 투입됐던 한국군은 어느 부대도 미국 통제 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전사 부대가 광주에 배치된 것을 사전에 몰랐고, 광주에서 취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NL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5.18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