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개설
대한민국 인터넷에서 전길남 교수를 빼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대학을 졸업한 전 교수는 미국 UCLA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컴퓨터 시스템 설계자로 일하다가 1979년 대한민국으로 와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일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컴퓨터를 제조할 교수가 필요했고, 전 교수를 단순히 컴퓨터 개발을 위한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 시스템 개발부장으로 초빙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네트워크 기술을 익혔던 전 교수는 네트워크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1982년 5월 15일 서울대학교와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간의 연결하는 네트워킹을 만들었다. TCP/IP를 이용하고 1200bps 전화선을 통해 연결한 SDN이 인터넷 시초이다. 이날 접속했고, 31일 인터넷이 개설됐다.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 인터넷 국가로 등극하는 것이었다.라우터 공개하지 않자
전 교수는 1983년 UUCP를 이용해서 네덜란드와, 1984년에는 미국의 CSNET과 연결했다. 당시 미국은 인터넷을 군사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점차 민간에 확대를 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당시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라우터로 연결해야 했다. 현재 라우터는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가격도 저렴하지만 당시 라우터는 크기가 크고, 무거우며 가격이 비쌌다. 우리나라는 미국 인터넷과 연결하기 위해 라우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쏘련(러시아), 중국, 북한과 인접국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당시 미소 냉전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인터넷을 개방한다면 비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쏘련, 중국, 북한 등에 흘러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미국은 NATO 등 서방국가 일부에게만 인터넷을 개방했다. 그런데 전 교수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라우터 대신 미국 인터넷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것이 UUCP이다. 이로써 미국 인터넷이 개방됐고, 경악한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전 교수에게 해당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요청했고, 전 교수는 아시아 주변국에 전수하면서 인터넷의 세계적 확산에 공헌했다. 역사가들은 전 교수가 아니었다면 인터넷은 소수 국가가 독점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한다. 이런 공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터넷 소사이어티에서 전 교수를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송재경·김정주 등이 제자
전 교수의 제자로는 엑스엘게임즈 대표 송재경, 넥슨 김정주 대표 등이다. 이들은 벤처 1세대인데 김대중 정부 들어서 벤처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전 교수가 제자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귀국할 당시에는 컴퓨터 제조 때문에 귀국을 했지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생 네트워크 즉 인터넷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인터넷 발전에 기여했던 인물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