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 간의 수혈
현미경이 발견되면서
19세기 현미경이 발견되면서 혈액에 대해 좀더 세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수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1870년 보불 전쟁이 발생하면서 발생한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직접 수혈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상병 중 일부는 건강하게 살아남았지만 일부는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의사들이 보다 안전한 수혈 방법을 찾아내면서 사람들의 피가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어떤 혈액 간에는 엉김이 있고, 어떤 혈액 간에는 엉김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사람의 피를 세 가지로 나누게 되는데 그것이 ABO식 혈액형이 된 것이다. 이에 란트슈타이너는 세 가지 피를 각각 A, B, O형이라고 이름 지었고, 그 다음해 데카스텔로와 스털 리에 의해 다른 성질의 피인 AB형을 발견했다. 이같은 발견은 사람의 목숨을 획기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헌혈은 일반화가 되면서 사람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의료행위 중 하나가 됐다. 만약 ABO식 혈액형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원인도 모른채 수혈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혈액형과 성격 맹신론
사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맹신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맹신이다. 1916년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일본인 의사 키마타 하라는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는 조사 논물을 발표했다. 1925년 일본 육군과 해군은 병사들의 혈액형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을 받은 동경여자사범학교 후루카와 강사가 1927년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유럽 국가 사이에서 혈액형을 이른바 인종 간 우열 기준으로 사용하는 논문을 당시에 발표했는데 일본이 인종 간 우열을 ‘성격’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하지만 해당 논문에 대해 일본제국주의 정부도 신뢰를 하지 못했고, 이에 사라졌지만 1971년 작가 노오미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대유행을 했다. 이후 곳곳에서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는 그런 맹신론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대유행을 했다. 하지만 혈액형과 성격은 연관된 바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