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24일 UFO 최초 목격 보고
[역사속 오늘리뷰] 6월 24일 UFO 최초 목격 보고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6.2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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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7년 6월 24일 사업가 케네스 아놀드가 UFO를 목격한 것이 근대에 들어와서의 최초 보고이다. 그 이전까지 여러 기록을 통해서도 UFO의 존재가 의심스러웠지만 UFO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UFO 붐을 일으킨 것은 이 사건이 최초이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이른바 ‘비행접시’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른 것 역시 케네스 아놀드가 처음이다. 이후 UFO 신드롬이 불어 닥치면서 전세계는 UFO 진실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UFO에 대한 진실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는데 많은 역할을 해왔던 것도 UFO이다.

“접시같이”

1947년 6월 24일 사업가 케네스 아놀드는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로 워싱톤주 레이니 산 근처를 날고 있었다. 그런데 왼쪽에서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9개 물체를 보았다. 아놀드는 처음에는 이것이 기러기라고 생각했지만 기러기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 군에서 개발한 샐운 제트 추진 비행물체가 아닐까는 생각을 했다. 아놀드는 “마치 심하게 흔들리는 보트처럼 빠르게, 혹은 중국의 연의 꼬리처럼 날았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그의 책 ‘The Coming of the Saucers’에서 “내가 오레곤주의 펜들론의 뉴스담당자들에게 말한 것은 그것이 접시를 물위를 가로질러 던진 것처럼 날았다고 말했는데 첫 번째 리포터가 이것을 ‘접시같이’라고 표현했고 이것은 다시 비행접시(flying saucer)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 이후 ‘비행접시’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놀드 스스로가 UFO보다는 오히려 ‘새’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UFO 불신론자들 사이에서도 아놀드가 목격한 것은 UFO라기 보다는 ‘새’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UFO 최초 목격 보고한 케네스 아놀드
UFO 최초 목격 보고한 케네스 아놀드

UFO의 시작은 ‘냉전의 산물’

아돌드가 UFO를 발견한 후부터 수많은 UFO 목격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50년대 미국 사회는 UFO는 소련이 만든 새로운 무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소련이 만든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첨단이라서 결국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정부 역시 소련이 만든 새로운 무기이거나 외계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UFO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시들어버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소련이 UFO를 제작할만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UFO 연구는 정부 영역이 아닌 민간 영역으로 점차 넘어가면서 1950년대 미국 정부 주도의 UFO 열풍은 식어버리게 됐다.

출판업계가 주목

하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UFO 신드롬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출판업계였다. UFO 연구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각도로 UFO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정보가 책을 통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세간의 관심도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UFO를 타고 화성과 금성을 방문해서 화성인과 금성인을 만났다는 목격담, 외계인 납치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1960~79년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가 없었던 미국인들로서는 UFO는 흥미로운 소재였고, 서점가에서 책을 집어들게 하는 구매력이 있는 소재였다. 그러다보니 UFO를 빙자한 사기 행각들도 많았고, 허위 정보로 가득 찬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CG 기술 발달하면서

UFO 신드롬은 1980년대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CG와 접목하면서 대중문화의 또 다른 상상력을 넓히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면서 영화나 드라마에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외계인과의 조우 등의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E.T.이다. 그리고 스타워즈 등으로 발현되면서 인간은 UFO를 통한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대중문화의 발달을 초래했다. 물론 인류 최초 인공위성인 1950년대 소련의 스푸트니크나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착륙과 같은 우주적 이벤트도 있었지만 여기에 UFO 신드롬이 합쳐지면서 대중문화는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1999년 세기말과 합쳐지면서

UFO 신드롬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또 다른 양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1999년 세기말이 겹쳐지면서 이른바 신흥종교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흥종교 조짐은 조지 아담스키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라엘리언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UFO 신드롬과 세기말이 겹쳐지면서 신흥종교들이 엄청 많이 발생했다. UFO 신드롬과 합쳐진 신흥종교들은 예수는 원래 외계인이고, 1999년 지구가 종말하게 되면 예수가 나타나 휴거(천국들림)를 하는데 결국 UFO를 타고 다른 별로 이주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신흥종교의 주장은 1999년 지구가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시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FO 신드롬은 여전했다.

2000년 들어서면서 디카·스마트폰 보급으로

UFO 신드롬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들했다. 왜냐하면 UFO를 목격했다면서 죄다 촬영한 이미지나 영상들이 흐릿한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 당최 ‘새’가 찍힌 것인지 ‘먼지’가 찍힌 것인지 일반인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47년 6월 24일 이후 어느 누구도 명확한 형태의 UFO를 촬영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시들거리게 만들었다. 또한 합성 기술이 발달하면서 UFO를 합성해서 만들게 되면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일반인의 관심은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스마트폰 보급은 더 이상 UFO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과거에는 목격담을 입에서 입으로 혹은 책을 통해서 전파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전파를 해야 하는데 어설프게 합성한 사진이나 영상으로 전파를 했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UFO 목격담이 쉽게 나오지 않게 되면서 시들거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대략 3만명 정도가 UFO를 목격했다고 목격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UFO 전문가들은 그 3만명 중에 대략 100여건 정도만 신뢰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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