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카빈 강도 사건이란
구로 카빈 강도 사건이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이종대, 문도석 2인이 탈취한 M1 카빈 소총을 사용해 여러 건의 강도살인을 저지른 사건을 말한다. 두 사람은 전에도 여러 건의 범죄를 저지르다가 1972년 9월 경기도 평택 예비군 무기고에서 M1 카빈 소총 3정과 다수의 실탄을 절취했다. 이후 그들은 은행에서 돈을 찾고 나오는 피해자 이모씨를 납치해 사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1973년 8월 25일에는 구로공단에 소재한 한 회사에서 직원 월급으로 찾아오던 현금 380만원(현재 가치로 약 6339만원)을 카빈소총 위협사격을 하며 탈취하는 무장강도를 저질렀다. 1년이 흐른 후인 1974년 7월 23일 추가 범행을 저지르고 7월 25일 승용차가 고장 나자 택시 잡아 탔는데 수상히 여긴 택시기사가 신고를 했다. 검문 과정에서 카빈 소총이 발견됐고, 범인 두 명 중 한 명이 총격을 가했고, 택시기사와 경찰은 황급히 도망쳤다. 이후 경찰이 출동해서 이들의 행방을 쫓았다.그 최후가 끔찍
그날 결국 문도석은 7살짜리 어린 아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했다. 자신은 남자답게 죽겠다면서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7월 26일 이종대는 여성 1명, 어린이 2명을 인질로 삼고 17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를 했는데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이종대는 자수를 권하는 경찰을 향해 “가족들 얘기는 꺼내지 마라. 내 마누라, 내 새끼들 죽이고 살리는 건 내가 결정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오후 8시 갑자기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에 경찰이 이종대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이종대가 “영구차를 준비해라. 두 아들을 죽였다”고 답변했다. 이후 또 다시 총성이 울려퍼졌고, 경찰이 이종대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에 경찰에 집안으로 들어가니 이종대, 아내 그리고 3살·6살 어린 두 아들이 모두 시체가 돼있었다. 큰 아들은 장난감 기타를, 막내아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서가 남겨져 있었는데 “태양아 큰별아 미안하다. 여보 당신도 용감했소. 너희들 뒤를 따라간다. 황천에 가서 집을 마련해서 호화롭게 살자. 이 냉혹한 세상 미련없다”였다. 마치 자신의 가족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쓴 것이다.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과연 자식의 죽음을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신문기사들을 살펴봐도 문도석과 이종대에 대한 비난 여론 뿐이었다. 강도살해사건을 일으킨 것도 비난 받아야 마땅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까지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대중매체의 주요 모티브가 되면서 출판, 영화, 드라마 등등으로 나왔다. 모두 아이들의 생사여탈권을 부모가 쥐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작품들이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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