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무시한 시내버스
서울 시내버스 시작은 1928년 일제강점기 때부터이다. 해방 이후 1949년 서울합승자동차 회사가 설립되면서 우리 손으로 시내버스가 운행되게 됐다. 이후 서울시는 계속해서 ‘시영(市營)버스’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버스업체들의 견제 때문에 무산됐다. 그러면서 2004년까지 387개 노선과 8천100여대의 시내버스, 253개 노선과 1천500여대 마을버스 등이 민영업체에 의해 운영됐다. 각 버스회사들의 무한경쟁체제가 되면서 대중교통은 서울시민들을 위한 교통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민들은 버스 노선만 보고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짐작할 수 없었고, 서울시민들은 버스 노선을 외워야 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시내버스 회사들은 파산 위기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버스기사들의 난폭운전, 불규칙한 배차, 종점까지 운행하지 않고 중간에서 스톱하거나 임의 회차, 결행 등이 발생했다. 버스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면 버스요금을 인상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버스기사들의 파업 역시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2002년 당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 공약과 함께 대중교통 체계의 전면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시장에 취임하면서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도입, 통합버스정보시스템의 도입, 간선급행버스체계의 도입, 통합환승요금제의 도입, 신규 공영 차고지의 조성 등 서울 시내버스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추진한다. 당시 다른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준공영제 시행은 기존 버스회사들이 격렬하게 반대를 했다. 헌법소원까지 제기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결국 2004년 2월 4일 서울시와 버스운송사업조합 간의 협약 체결이 이뤄지면서 버스개편 사업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대구광역시에 사용하던 권역 개념을 도입했고, 노선의 성격에 따라 모든 시내버스를 파랑(간선), 초록(지선), 빨강(광역), 노랑(순환)의 4가지 체계로 분류했다. 또한 통합요금환승제도의 시행을 위해 철도청과 환승요금 협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마침내 7월 1일 바뀐 시내버스 체계가 운영되기에 이르렀다.혼란 속에서
이날 시범운행 겸 시민 홍보를 위해 시내버스 요금을 받지 않았다. 각종 매체를 동원해서 바뀐 체계에 대한 홍보를 했다. 하지만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바뀐 버스 체계에 대해 정보력이 취약한 노년계층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특히 다음날인 7월 2일 통합환승제 시스템이 문제가 발생하면서 요금 산출이 잘못되기도 했다. 이에 당시 LG CNS는 원인을 조사하고 7월 15일이후부터 문제를 해결했다. 아울러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에는 간선버스 뿐만이 아니라 지선버스와 경기도 버스까지 중앙차로에 전부 진출하면서 버스가 줄줄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욱이 버스 노선별 색깔과 디자인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면서 이명박 당시 시장은 대시민 사과를 해야 했다.점차 안정화
한달 정도 혼란을 겪었지만 점차 안정화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시민들의 여론 역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민영으로 운영할 경우 수요가 없으면 노선이 폐지가 되기도 했지만 수요 여부와는 관련 없이 균일한 배차 간격이 유지되고 장거리 노선 버스가 사라졌으며, 불편한 환승체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동에 대한 편리함이 제공됐다. 무엇보다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연계되면서 교통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 특히 준공영제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 민원을 제기하면 서울시가 즉각 응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점차 서울시민들의 반응이 호의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덩달아 다른 지역 지방자치단체들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준공영제를 도입하지 않은 지자체들도 준공영제 도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서울 시내버스 체계는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