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고추
[오늘 통한 과거리뷰] 고추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7.01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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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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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장마철에 고추 농가가 비상이다. 탄저병에 걸리면 고추 생산량이 최대 절반 이상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방제가 요구된다. 고추 탄저병은 암녹색 반점이 겹무늬 궤양으로 커지면서 나타난다. 기온과 습도가 높은 여름에 흙이나 열매 속 곰팡이균이 비바람에 날려 번지는데, 한번 걸리면 수확량이 최대 60%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잠복기가 열흘을 넘기는 경우도 많아 발병이 확인되면 대처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장마 전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비에 잘 씻겨 내려가지 않는 예방약을 꼼꼼히 뿌려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탄저병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제를 뿌려주되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작용 기작이 다른 약으로 바꿔가며 살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비가 오기 전에 이랑을 부직포나 비닐로 덮어 병원균이 튀어 오르지 않도록 하고, 밭에 물이 고여있지 않도록 철저한 배수로 정비를 권고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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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살상용? 혹은 방한용?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 식탁에 올라왔다. 그 이전까지는 하얀 김치밖에 없었다. 고추의 유래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일본에서느 처음에 고추를 음식이 아니라 타비(일본식 버선)에 뿌려 발을 따뜻하게 하는 화학물질로 사용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선인에게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속설이 있다. 어쨌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통해 고추가 유입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추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경신대기근 이후인 17세기 이후이다.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산림에 나무가 모자라게 됐다. 그러다보니 덩달아 소금 제조가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땔감이 상당히 필요했는데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날씨가 추워지면서 난방용 땔감 소비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소금 제조에 필요한 땔감으로의 공급이 어려워졌다. 이에 소금이 귀해지면서 음식물 저장 방법으로 새로운 방식의 보급이 필요했다. 이에 향신료로 고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음식을 소금으로 염장을 하거나 후추로 저장을 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소금으로 염장을 하는 ‘짱아지’나 고춧가루로 보관하는 김치 종류가 보급된 것이다.

모내기로 인해 고추는 더욱 보급

조선 후기 이앙법 즉 모내기가 도입되면서 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밥 소비가 덩달아 많아졌다. 흰쌀밥만 먹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짜거나 매운 음식을 원하게 됐다. 오늘날 밑반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짱아지나 김치 등이 보급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고추 농사는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다. 모내기를 통해 벼 재배에 대한 노동력이 한결 수월해지면서 고추 농사에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러면서 고추 생산량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왕실은 고추를 거의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영조대왕만 고추장을 즐겨했을 뿐이다. 다른 왕들은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즐겨하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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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고추, 중앙종묘와 오뚜기에서 개발

청양고추는 종묘 업체인 중앙종묘와 오뚜기에서 1983년 개발한 고추 품종이다. 청양고추는 청송군과 영양군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대해 청양군이 반발하면서 이름의 유래를 두고 아직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해당 품종의 특허 및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중앙종묘가 멕시코의 세미니스에 인수됐고, 2005년 다국적 기업 몬산토에 넘어갔고, 독일기업 바이엘에게 인수됐다. 이에 청양고추 씨앗과 모종을 다사 심어먹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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