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7월 7일 7.7선언
[역사속 오늘리뷰] 7월 7일 7.7선언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7.07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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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통령 기록관
사진=대통령 기록관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088년 7월 7일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7.7선언을 했다. 7.7선언은 그동안 대결 국면이었던 남북 관계를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와 동시에 북방정책으로 이어지면서 동구권 국가는 물론 소련과 중국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수교를 맺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위상을 드높히는 계기가 됐다.

7.7선언의 배경

7.7선언의 배경은 전두환 정권 시절 3저 호황을 중심으로 해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내면서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우리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북한이 더 잘 살았기 때문에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면서 더 이상 체제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동시에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국가만 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구권 국가는 물론 소련의 참가 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시작해서 84 LA올림픽까지 자유진영만 참가하는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그것을 전세계 국가가 모두 참가하는 그런 올림픽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7.7 선언을 한 것이다. 실제로 7.7선언 이후 동구권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혀왔고, 소련도 그러했다.
사진=대통령 기록관
사진=대통령 기록관

7.7선언 내용은

7.7선언은 남북 동포의 상호교류 및 해외동포의 남북 자유왕래 개방, 이산가족 생사 확인 적극 추진, 남북교역 문호개방, 비군사 물자에 대한 우방국의 북한 무역 용인, 남북 간의 대결오교 종결, 북한의 대미·일 관계 개선 협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선언은 북방정책으로도 이어졌다. 7.7선언 이후 북한에 대한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했고, 특히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일반적인 정보가 사회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북방정책으로도 이어져

7.7선언은 자유진영 국가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이에 1988년 8월에 헝가리와의 상주대표부 설치협정 체결을 시작으로, 1990년 소련-1992년 중국과 수교했고 더 나아가 1991년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까지 이뤄내며 결실을 맺었다. 북방정책은 우리나라 경제영토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소련과 중국의 수교는 수출의 다변화를 이끌어냈고, 오늘날 수출 1위 국가가 중국이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이다. 유엔 동시 가입 전에 우리나라가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하려고 해도 북한과 소련 및 중국 등의 견제가 있었는데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인해 더 이상 견제를 할 국가가 사라졌다.
사진=대통령 기록관
사진=대통령 기록관

남북정상회담으로도 이어져

7.7 선언은 오늘날 대북 정책의 기본 골격이 됐다.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 탄생해도 대북 정책의 기본 골격은 7.7선언에 기인한다. 7.7선언을 제외하면 대북 정책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노태우 정권은 대북 정책의 기본 뿌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해당 선언은 2002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서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남북정상회담의 근간이 됐다. 만약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7.7선언이 없었다면 이후 여러차례의 남북정상회담도 없었을 것이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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