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만들어진 음료
아돌드 히틀러가 집권한 시기에 대공황이 찾아왔다. 실업자 구제 정책으로 공장 건설을 많이 추진했는데 미국 코카콜라 생산 시설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독일에서도 콜라가 대중적 음료가 됐다. 당시 독일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콜라를 많이 마시는 국가가 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은 독일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했고, 미국은 코카콜라 시럽의 대독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자 독일의 코카콜라 공장은 가동 중단 사태에 빠진다. 당시 독일 코카콜라는 중립국 스위스를 통해 우회적으로 콜라 시럽을 들여오려고 했지만 불가능해졌고, 이에 독자적인 새로운 음료를 개발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음료가 개발됐는데 독일어로 Fantasie(환상, 상상력, 판타지)를 따서 ‘환타’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 코카콜라 사장이었던 카이트가 직원들에게 새로운 음료의 이름을 공모했는데 아이디어들이 영 시원치 않자 카이트는 “상상력(Fantasie)을 좀 발휘하란 말이야!”라고 윽박 질렀고, 한 직원이 재빠르게 환타(Fanta)라고 했고, 그것이 그대로 채택됐다고 한다. 환타가 개발되면서 독일 군인들은 환타를 애용했다. 환타를 애용한 것은 환타를 설탕 대체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차 대전 종전 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미국 코카콜라는 독일에 코카콜라 공장을 다시 접수했다. 그런데 환타가 만들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코카콜라 CEO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막스 카이트를 치하했고, 코카콜라 유럽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리고 환타는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음료이자 저질 재료로 만든 음료였기 때문에 단종됐다. 하지만 1950년대 코카콜라 라이벌인 펩시가 새로운 음료를 출시하면서 코카콜라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독일에서 인기 있었던 음료 브랜드인 환타를 1955년 부활시켰다. 그리고 이탈리아 지사에서 본격적으로 환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의 성분과 제조법이 아닌 새로운 성분과 제조법으로 만들게 됐다. 이후 환타는 성공적인 음료가 되면서 1960년 코카콜라 회사에 정식으로 인수되면서 미국으로 상륙했다.우리나라에도 전파
환타는 1960년대 전세계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옛 두산그룹 계열이었던 한양식품에서 환타 오렌지가 출시했다. 1973년 포도맛, 레몬맛을 출시했고, 2000년 파인애플, 2010년 사과향을 출시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국민에게 사랑 받는 음료가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