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비행하고
1969년 7월 16일 오전 8시 32분 정상적으로 발사가 됐다. 달로 향하는 과정은 텔레비전 중계방송으로 이뤄졌는데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을 암스트롱이 설명했고, 올드린은 팔굽혀펴기를 보여줬고, 콜린스는 치킨스튜를 만들었다. 이것이 전세계로 전파를 타고 생중계가 됐는데 당시 소련도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소련은 새턴C 로켓에 대항해서 N1 로켓을 만들었지만 4번의 발사시험에서 4번 모두 폭발했기 때문이다. 7월 20일 드디어 달 궤도에 진입하자 이글은 컬럼비아에서 분리가 됐다. 그리고 착륙을 했다. 하지만 해치가 너무 작아서 준비하는데만 2시간 걸렸다. 이런 이유로 7월 20일 달에 착륙했지만 7월 21일 02:39 UTC에 암스트롱은 해치를 열고 착륙선의 사다리를 내려갔다. 암스트롱은 사다리를 내려가며 착륙선에 부착된 카메라를 켜고 위에 나온 기념판을 착륙선 사다리에 부착시켰다. 첫발을 내딛은 암스트롱은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올드린은 암스트롱 뒤를 이어 달에 발을 밟았고, 웅장한 황무지라고 묘사했다. 두 사람은 성조기를 세우는 등 선외활동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로 귀환했다.소련에 뒤진 우주전쟁
사실 미국이 달에 가겠다는 계획은 당초 없었다. 하지만 소련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스푸트니크 무인 위성을 쏘아올렸고,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를 갔다 오면서 미국은 미소 우주전쟁에서 뒤쳐진 상태가 됐다. 1961년 소련은 보스토크 1호로 세계 최초 유인우주선 제작국 타이틀을 얻었다. 이에 자존심이 구겨진 미국은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 후 한 달도 안 되어 머큐리 계획을 통해 첫 우주비행을 감행했다. 앨런 셰퍼드가 탑승한 프리덤 7호를 머큐리 계획의 일환으로 발사했으나, 로켓의 파워부족으로 소련의 보스토크가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온 것과는 달리 준궤도비행으로 그쳤다. 이후에도 계속된 시도를 했지만 탄도비행에 그쳤고 3차 비행에서 프렌드십 7호(존 글렌)이 겨우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자존심을 구긴 미국이었다.회심의 카드, 아폴로 계획
자존심이 상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면서 아폴로 계획을 밝혔다. 그러자 소련의 우주개발을 이끌던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소련도 달 탐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달 탐사에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경제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역시 아폴로 계획을 밝혓지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흐루쇼프에게 ‘기술-자금 협력’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련은 기술 유출을 우려해 반대했고, 곧이어 케네디가 암살되면서 미국은 독자적인 달 탐사를 추진하게 됐다. 미국 특히 NASA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했다. 머큐리로 우주에 간신히 발을 들여놓았는데 사람을 달로 보내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소련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NASA에 자원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NASA는 달까지 보내기 위한 거대 로켓 새턴 V 로켓 개발에 착수했고, 달 착륙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실질적인 비행 기술을 테스트했다. 그것이 ‘제미니 계획’이었다. 제미니 계획에서는 랑데부, 도킹, 우주 유영, 장기간 우주 체류 등 달 착륙에 필요한 테스트가 이뤄졌고,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결국 달 착륙을 했다.한동안 사람 보내지 않은 미국
물론 아폴로 11호 이후에도 계속해서 미국은 사람을 달로 보냈다. 하지만 아폴로 계획 이후 한동안 사람을 달로 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막대한 예산 때문이다. 아폴로 계획에 투입된 예산은 미국 GDP의 0.75%에 해당했고, 현재 시세로는 약 230조원 정도이다. 소련이 굳이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주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미국이 ‘굳이’ 달에 사람을 보낼 필요가 사라졌다.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자 미국 국민들도 사람을 달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 경제적 비용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달 탐사가 돈이 된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달 탐사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달은 ‘헬륨3’이 풍부하다. 헬륨3를 핵융합 발전에 활용하면 우라늄을 기반으로 한 원자력 발전보다 5배의 효율을 내면서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다. 헬륨3 1g은 석탄 40톤과 비슷한 에너지를 낸다. 헬륨3를 우주선 1대 분량(25톤)만 가져오더라도 미국 전체에서 사용하는 1년 치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헬륨3는 태양풍에 의해 달에 계속 퇴적되고 있어 고갈 우려도 없다. 또한 달에는 희토류 등 지구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여러 광물이 존재한다. 이와 더불어 최근 달에서 얼음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물이 존재한다면 달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주개발 전초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아르테미스 계획이 20개국 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NASA가 주도하는데 2025년 유인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킨다는 계획이다. 해당 계획에 우리나라도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2028년까지 달에 영구 탐사기지를 건설하고 화성 탐사 전초기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다누리호 발사
이와 별개로 국내 기술로 독자개발한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8월 3일 오전 8시 20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미 우주군기지 40번 발사대에서 민간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 팰컨9(Falcon-9) 발사체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다. 예정대로 발사가 이뤄지면 오는 12월 16일 달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이후 달 궤도를 돌면서 점차 달 고도 100㎞인 ‘임무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다누리호는 하루 12회 공전하면서 1년 동안 달 표면 사진을 촬영하고, 편광 지도를 마는다. 아울러 달 궤도와 지구를 ‘우주 인터넷’으로 연결해 통신하는 시험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세계 최초’다. 아르테미스 계획과는 별도로 추진하는 이유는 달 클럽에 들어가지 못하면 달 개발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달 탐사로 얻는 경제적 가치가 앞으로 상당한데 늦게 달 탐사에 뛰어들게 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달 탐사에는 여러 가지 첨단 기술이 들어간다. 그것은 우리나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달 탐사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