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금융공급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이뤄졌고, 국내기업의 숫자와 규모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금융수요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기관 내 비축된 자금 자체가 미미했기 때문에 지하금융인 사채시장에서 유통되는 자금을 빌려서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채시장이 제도권 금융기관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꾸는 것이 쉽지 않았고, 당시 주식시장은 원활하지도 않았다. 이런 이유로 사채 금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사채시장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제성장율이 사채 금리보다 높았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사채를 끌어다 써도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경제성장이 마냥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1968년 13.2%, 1969년 14.6%, 1970년 10.1%, 1971년 10.5%인 반면 1972년 7.2%로 급격히 떨어졌다. 두 자리 숫자에서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처럼 경제성장률이 갑자기 떨어진 이유는 1969년 5월 83개 기업 중 45%가 부실 기업으로 분류됐다. 그만큼 사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환율을 18% 상승시켰다. 1970년 1달러 317원이던 환율이 1971년 1달러 373원으로 늘어났지만, 외국 차관의 상환일이 70년대 초반에 몰렸고, 경제성장률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기업들에게도 날벼락이었다. 이에 1971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해당 면담에는 김용완 전경련 회장, 신덕균·정주영 전경련 부회장,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 총리, 김학렬 부총리, 남덕우 재무장관 등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박정희 정부는 사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리고 1972년 8월 2일 오후 11시 40분 긴급명령권으로 8.3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8.3 조치 전격 발표
해당 조치는 사채들을 동결한 것인데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의 출처를 밝혀야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8월 3일 0시부터 발동되는 것으로 사채 동결을 위한 일주일 간의 신고접수 기간을 부여했다. 초반에는 머뭇거렸지만 “신고된 사채에 대해서는 자금출처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신고가 줄을 이었다. 이때 신고된 사채는 4만 677건으로 3천456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통화량의 80%에 해당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시선으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조치였다. 반시장저인 정책이 시행된 것은 수많은 기업들이 고리사채 이자폭탄으로 인해 파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현재 유명한 대기업들 역시 당시에는 이자폭탄으로 파산에 내몰렸다. 더욱이 만약 조치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이듬해인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역사속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재벌의 탄생
은행들은 사채시장을 흡수하기에 이르렀다. 사채 시장을 흡수한 금융기관들은 관치금융으로 바뀌었다.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금융기관이 되면서 정부의 입맛에 맞게 기업에게 대출을 해주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 이전에도 기업과 정부가 온갖 비리 등으로 얼룩졌는데 8.3조치로 더욱 얽히게 됐다. 친정부 성향의 기업은 대출 특혜를 받았고, 반정부 성향 기업은 하루아침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국제그룹이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기업들로서는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서 문어발식 확장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뒤에는 항상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뒷배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기업을 하나 만들어서 공장 설비 등에 투자를 해서 경영활동을 하고, 그렇게 수익이 나면 다시 정부에 뒷돈을 대주는 등의 악순환이 계속 됐다. 실제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88년 11월 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5공 특위)’ 청문회에서 일해재단 비자금 조성에 대해 발언을 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로 인해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을 할 수 있는 그런 대기업이 탄생하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하지만 재벌의 폐해가 발생했고, 그것이 결국 IMF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금융기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형적인 모습이 대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켰지만 그것이 결국 IMF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