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은 왜 발생했나
거대한 산업으로
해적 산업이 크게 성장을 하면서 그에 따른 부수적인 산업도 발달하게 됐다. 해적들이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했고, 그 식량이나 생필품을 해적들에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큰돈을 벌은 해적들은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해적들은 언제 자신이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돈을 벌면 소비를 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사치를 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사치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늘어났다. 심지어 해적들이 도시에 나타나면 매춘부들이 달라붙었다고 한다. 특히 인근 국가 여성들도 원거리 원정을 했다.소탕작전 시작
2008년 이후 계속해서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피해를 입자 미 해군은 2008년 8월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해 아덴만 순찰에 나섰다. 유엔 안보리는 2008년 결의안을 통해 아덴만을 통행하는 국가의 국제적인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해당 요청에 따라 우리나라는 2009년 청해부대를 파병했다. 그리고 청해부대는 2011년 1월에 한국 화물선 삼호주얼리호가 해적이 피랍되자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이를 구출했다. 여기에 해운사들이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몸값 지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민간군사기업들이 소말리아 해역으로 몰려갔다. 너무 많은 민간군사기업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인건비가 저렴해지기 시작했고, 민간해운회사들은 무장경비 병력을 선박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말리아 해적들도 납치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말리아 해적이었던 사람들이 더 이상 해적질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민간군사기업으로 입사를 했고, 무장경비 병력으로 선박을 보호하는데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무장경비 병력으로 채용된 해적들에 대해서도 민간군사기업들은 우대를 했다. 왜냐하면 본인들의 경험이 노하우가 됐기 때문이다. 점차 해적 산업이 사양화가 되면서 마찬가지로 해적 산업의 부대 산업들 예컨대 유흥업 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한 소말리아에서도 정식 정부가 세워지면서 점차 치안이 안정되면서 해적 산업 역시 사양산업이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