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사형수가
망나니는 ‘막난이’의 변형된 말인데 주로 죄인이나 천인들이 일을 담당했다. 사형수가 주로 담당했는데 사형을 면하는 대가로 처형을 했다. 사극에는 거대한 칼을 들고 춤추면서 입에 술을 머금고 있다가 칼에 뿜고 목을 베는 장면이 있지만 실제로 망나니는 칼춤을 추지 않았고, 술을 칼에 뿜지도 않았다. 칼춤 추는 등의 모습은 고증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망나니는 사회에서 천시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천인에게 망나니 역할을 시켰지만 천인들도 점차 망나니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형수들에게 사형을 면하는 대신 망나니 역할을 시킨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망나니를 손가락질했고, 본인들도 자책감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도 맨정신에 살 수 없었고, 이런 이유로 술독에 빠져 살아야 했다.각종 폐단 발생
망나니가 술독에 매일 빠져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다. 문제는 망나니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망나니를 천시하면서 채용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망나니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형수 가족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이었다. 참수를 할 때 칼이 목에서 빗나가거나 힘이 덜 실리게 되면 사형수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형수 가족들이 망나니가 참수를 집행하기 전에 미리 돈을 쥐어줘서 고통 없이 참수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관청에서도 사형 당일 망나니에게 술과 고기를 푸짐하게 내려 먹이도록 했다. 이에 망나니는 사형집행 당일에는 한 몫 단단히 잡을 수 있게 되면서 일부 망나니들은 사형집행 전날 사형수 가족들을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망나니의 행패에 못 이긴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망나니에게 논밭을 증여하니 그제야 그 마을에서 망나니의 행패가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망나니의 행패가 극심하면서 관에서도 고민이 깊어졌다. 합정과 망나니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는 합정이라는 지명이 있다. 인근에 조개우물이 있어서 한자명으로 합정(蛤井 : 조개우물)이라고 하고, 일제강점기 때 합정(合井)으로 바뀌게 됐다. 조개우물이기 때문에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물을 판 이유는 망나니들이 칼을 갈기 위해 우물을 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들이 잠두봉에서 참수형을 받았는데 대략 8천여명이 됐다고 한다. 잠두봉이 병인박해 이후 절두(즉 머리가 잘려 나갔다)산으로 바뀌게 된다. 8천여명의 천주교가 참수형을 당했으니 망나니들이 칼을 갈기 위해서 우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조개우물을 판 것이고, 오늘날 합정이 된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