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 그리고 실종 그리고 부활
현재 호적이라는 제도가 사라졌지만 한때는 호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 호적에 ‘부활’이라고 적힌 사람이 있다. 바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포로 문제의 당사자였던 유종철 일병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정부는 한국군 포로는 없다고 발표를 했지만 학계에 따르면 수백명의 한국군 포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북한으로 납북된 베트남 참전 군인의 존재를 부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군 포로가 됐다가 생존한 사람을 사망처리한 경우도 있었다. 유종철 일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73년 파리 협정 당시 북베트남에 역류됐던 유종철 일병이 송환됐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미 전사 통지서를 받았고, 국방부에서도 그의 존재를 몰랐다. 이런 이유로 유 일병은 이미 전사 처리가 됐고, 국립묘지에 묘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이미 호적에는 ‘사망’이라고 처리가 돼있었기 때문에 생환된 유 일병에 대한 신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결국 호적에 ‘부활’이라고 기재했다. 부활이라는 의미는 우리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한국군 포로 부인하는 정부
유 일병 사건 이후 국방부는 “현재 파악된 실종자들은 월북한 상태이고 그들은 반역자다”고 선포했다. 그러다보니 납북된 한국군 포로는 자진 월북한 것으로 둔갑됐다. 안학수 하사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국 2009년이 돼서야 우리 정부가 안 하사의 납북을 ‘납북’으로 인정했다. 그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 정부는 한국군 포로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 용감한 군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보니 한국군 포로 가족들은 빨갱이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