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통한 과거리뷰] 찰스3세와 다이애나비
[오늘통한 과거리뷰] 찰스3세와 다이애나비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9.1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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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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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영국 연방 국가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를 하면서 그의 아들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영국 즉위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런던에 있는 왕실 저택인 세인트 제임스 궁에서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는 찰스 3세 국왕이 됐다"며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라며 즉위를 선언했다. 하지만 군주제 폐지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할만한 품위를 갖고 있느냐 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을 ‘다이애나비’를 영국의 왕비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3세와 결혼한 다이애나비

다이애나비는 찰스3세가 왕세자 시절 결혼해서 슬하에 왕위 계승 서열 1위 웨일스 공 윌리엄과 5위 서식스 공작 해리 두 아들을 뒀다. 순탄치 못한 왕실 생활과 불화 끝에 1992년 별거에 돌입하고 1996년 이혼했다. 자신의 대중적 영향력을 활용해 봉사와 자선활동에 헌신하면서 민중의 왕세자비로 불리면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혼 다음 해인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다가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전세계적인 애도를 받았다. 항년 36세. 찰스 3세와의 만남은 20세 때부터 본격화됐고, 12번 만남을 가진 후 찰스 3세는 청혼을 했다. 그리고 왕세자비가 됐다. 그러면서 20세기 신데렐라라는 별칭을 얻었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영국 왕실은 그야말로 당황했다. 그런 가운데 찰스3세는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카밀라 파커볼스와 연인 관계였다. 다이애나는 더 이상 찰스3세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은 ‘왕세자비라는 자리에 앉혀 놓기 위한 적당한 인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찰스 3세는 ‘왕위 계승권’을 위해 다이애나를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게 만든 것이다. 왕위 계승권을 위해 다이애나와 결혼을 했고, 사랑은 카밀라 파커볼스와 한 것이다.

외부활동 잦았던 다이애나비

찰스3세가 불륜을 저지르는 동안 다이애나는 왕세자비라는 지위로 대외활동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영국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왕실로서는 찰스 왕세자 대신 인기를 독차지하는 그녀에 대해 통제를 해야 했고, 다이애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에 왕실 전기 작가의 손을 빌려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왕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폭로, 고발하는 책을 출판하고는 1992년 12월 9일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에 들어갔지만 파파라치의 극성은 엄청났다. 그러면서 1996년 8월 28일 결국 이혼을 했다. 다이애나는 이혼을 하면서 파파라치로부터 해방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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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머니 잃었다

이혼 이후 다이애나는 자선과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와 적십자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대인지뢰 제거 운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면서 다이애나가 사망한 직후인 대인지뢰 금지 국제운동 본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에 비해 영국의 왕실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집안으로 매도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의해 쫓기던 다이아내 일행은 결국 속력을 높였다가 퐁드랄마의 지하차도 기둥에 충돌을 했고, 운전사와 수행원은 즉사했다. 다이애나와 경호원은 살아있었는데 파파라치들은 그녀를 신속히 구출하기는커녕 플래시를 마구 터뜨려댔다. 구조대가 도착한 후에도 파파라치들의 방해로 구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결국 차에서 꺼내졌을 때는 심정지가 발생했다. 결국 사고 발생 2시간만에 병원에 이송됐고 새벽 04시 사망을 했다. 파파라치들은 과실치사, 사생활 침해, 구조거부죄(선한 사마리아인 법)로 체포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무죄를 받았고, 주범 격의 3명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1유로의 벌금이 선고됐다. 며칠 뒤 테레사 수녀가 선종을 하자 세계 언론들은 다이애나와 함께 ‘세계의 어머니를 잃었다’면서 대서특필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다이애나가 사망을 하면서 영국 국민들로서는 아직도 ‘다이애나비’로 불리고 있다. 이미 이혼을 했기 때문에 ‘비(妃)’라는 명칭은 떼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다이애나비로 불리고 있다. 이는 찰스 3세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에 비해 평가가 박한 이유도 다이애나비 때문이다. 다이애나비와의 결혼생활이 원만했고, 다이애나비가 사망을 하지 않았다면 찰스 3세의 평가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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