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르네상스
[역사속 경제리뷰] 르네상스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9.23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르네상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일어난 문화계의 큰 변화를 말한다. 기본적인 성격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복원을 추구하며, 흔히 문예부흥을 말한다. 중세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르고, 그런 암흑기를 깨부수고 인본주의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 바로 르네상스이다. 이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서구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가 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이유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문헌들과 지식들이 이탈리아에 보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부흥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에서는 맘루크 왕조가 들어섰고, 십자군 전쟁을 종결시켰다. 맘루크 왕조는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을 격퇴시켰고, 예루살렘 왕국을 멸망시켜 십자군을 몰아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후추 교통로를 확보하게 됐다. 맘루크 왕조는 베네치아 상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향신료 거래를 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향신료의 중간 거래처가 됐다. 경제적인 부는 이탈리아의 각 지역에서 소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서유럽은 봉건제로 점철됐지만 이탈리아는 교황령을 제외한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 국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군주론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군주 국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의 성장으로도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아비뇽 유수 이후

1309년부터 1377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한 이른바 아비뇽 유수가 단행됐다. 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그야말로 교황이라는 직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아비뇽 유수가 끝나면서 교황은 다시 교권을 세워야 했고, 황폐화된 로마를 재건해야 했다. 교황의 권위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문화적 우월주의가 필요했다. 따라서 그에 따른 면죄부를 남발하게 되고, 그 면죄부를 통해 돈을 확보한 교황은 전세계에 기술자를 불러들여 성당 등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즉, 이탈리아 소국들도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문화에 투자한 것처럼 교황도 자신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면죄부를 남발하면서 채운 경제적 부를 성당 건축에 투자를 하면서 해당 시기에 수많은 성당들이 건축됐다.

바리바르 해적 소탕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난 또 다른 이유는 무슬림 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바리 해적을 소탕했기 때문이다. 당시 알제리 해역을 중심으로 지중해를 장악한 해적이 바르바리 해적이다. 바르바리 해적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의 주요 교통로를 장악하면서 유럽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그것을 뚫고 이탈리아가 지중해 연안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됐다. 이를 통해 아시아에서 건너온 향신료를 전 유럽에게 보급하는 중간무역 역할을 하게 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