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토 지대
기후가 만든 축복
초르노젬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후’ ‘식생’ ‘지형’ 때문이다. 우선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숲이 크게 우거지지 못했다. 숲이 우거지지 않았다는 것은 지력(地力)의 소모가 최소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무기질을 소모하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 키 정도 자라는 1년생 식물들이 자라는데 이들은 겨울이 되면 죽는다. 즉, 흑토에서 자란 1년생 식물들은 그해 겨울이 되면 대부분 흑토에 자신의 영양분을 그대로 반납한다. 지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질소의 경우에도 1년생 식물들은 겨울이 되면 땅에 질소를 반환하기 때문에 질소가 그대로 쌓이게 될 수밖에 없다. 잎이나 줄기가 썩어서 흑이 된 부엽토가 누적되고, 그것이 검은 흙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비가 1년생 식물이 자랄 만큼 온다는 것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내리지도 않는다. 1년생 식물 즉 벼나 밀 등 1년생 식물이 자랄 정도의 강수량이기 때문에 밀이나 옥수수 재배가 가능한 것이다.이민족 침입에 취약
하지만 곡창지대라는 것은 결국 이민족 침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키예프 공국 외에도 역사적으로도 스키타이, 고트족 등 여러 민족들이 침략해왔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우크라이나를 지배했을 당시에도 초르노젬에서 생산된 농작물이 드네프르 강과 비스와 강을 거쳐 발트 해 연안의 단치히(현 그단스크)에 집산된 후, 유럽 전역으로 수출됐다. 한편 러시아 제국이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를 전부 점령하고 흑해 북부 연안을 평정한 이후에는 오데사 항이 건설되어 이곳으로 초르노젬의 농산물이 집산, 수출됐다. 강력한 국가가 이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면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번영을 크게 누리게 될 수 있지만 쇠퇴기에는 외적의 침입에 쉽게 노출되는 지역이다. 유럽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해당 지역을 먼저 차지하려고 하는 것도 흑토에서 생산되는 농작물 때문이다. 그만큼 아픈 역사가 많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