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문화와 함께한 숟가락·젓가락
서구유럽은 주로 밀가루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면서 칼과 포크 문화가 발달했다. 중동국가에서는 난이 발달하면서 주로 손으로 먹는 문화가 있었던 반면 동아시아는 쌀밥 문화였다. 쌀로 밥을 해먹게 되면 손으로 먹기에는 너무 뜨겁기 때문에 숟가락이 발달하게 됐다. 그리고 쌀밥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밑반찬을 집어 먹는 용도로 젓가락이 발달했다. 젓가락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발달했는지는 명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나뭇가지 두 개를 부러뜨려 사용하는 등을 보면 오래전부터 젓가락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치를 당시 장량은 유방이 밥을 먹던 젓가락을 뺏어 분질렀다는 기록이 있다. 상나라 왕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었다는 고사를 한비자가 전하기도 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젓가락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숟가락은 고조선시대 청동기 유물로도 발굴됐지만 젓가락은 삼국시대 이전은 없기 때문이다.젓가락은 귀족들 전유물
한반도에서 젓가락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지만 젓가락은 주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이유는 쌀밥을 먹는데 있어 밑반찬이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계층은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쌀밥에 밑반찬 한 두 가지면 충분했다. 따라서 밥을 퍼먹는 용도로 숟가락이 필요했고, 밑반찬은 주로 손으로 집어먹는 방식을 취했다.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육식을 금하는 풍습이 있었지만 귀족들은 육식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불에 구워먹는 풍습이 정착되면서 젓가락 사용이 필수적이었다. 반면 서민들은 육식을 금하는 풍습뿐만 아니라 고기를 섭취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젓가락 사용할 일이 없었다. 조선시대 넘어와서 유교국가로 오면서 육식을 금하는 풍습이 사라졌지만 ‘소’는 농경에 필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양반 중에서도 일부 소수만 쇠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주로 소의 부산물을 끓여먹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이유로 굳이 젓가락이 필요 없었다. 다만 17세기 이후 모내기(이양법)이 보급되면서 경제적 풍요가 이뤄지면서 서민들 사이에서도 젓가락 문화가 점차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젓가락 문화가 정착됐다는 것은 반찬이 한 두 가지에서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일제강점기 당시 젓가락 보급
하지만 서민들에게 젓가락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일제강점기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광물 공출 때문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조선땅의 광물이란 광물은 모두 공출해갔다. 놋쇠그릇은 물론 놋쇠 숟가락 등도 공출해갔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숟가락이란 숟가락을 모두 거둬갔다. 문제는 나무 숟가락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나무젓가락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에도 주로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1940년대 한반도에 특수강 공장을 북한에 설립했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가 1972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특수강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퍼지기 시작했다.젓가락질 예절 논란
DJ DOC 노래 ‘DOC와의 춤을’에서도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노랫가사가 있듯이 젓가락질 예절 논란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196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젓가락질 담론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젓가락질 예절이 특별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젓가락질 예절이 특별하게 존재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구한말 전까지는 젓가락은 귀족들의 존유물이었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밥상은 ‘각상’이었다. 즉, 한 사람당 밥상 하나씩 해서 밥을 먹었다. 그런 이유로 굳이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 것에 대해 참견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시대 민화들을 살펴보면 젓가락질에 대해 특별한 규격이 없이 다양했다. 즉, 각자의 개성대로 젓가락질을 했던 것이다. ‘각상’ 문화가 ‘겸상’문화로 바뀌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6.25 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살이를 하면서 ‘각상’을 모두 버리고 피난을 가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겸상’ 문화가 정착됐다. 즉, 오늘날 겸상 문화에서 예절을 따지는 것은 사실 그 기원은 얼마 되지 않았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