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과 확실히 다른
조직폭력배 소탕 작업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에도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이정재를 비롯한 정치깡패를 무더기로 체포했고, 사형을 언도했다. 전두환 정권 때는 삼청교육대 등으로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 때는 일부 조직폭력배만 잡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때는 조폭이라고 의심만 되면 무조건 체포부터 했다. 이런 이유로 엉뚱한 사람들도 많이 붙잡히기도 했다.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윤석양 이병의 폭로도 있었겠지만 1980년대 조폭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3저 호황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른바 유흥문화가 발달했다. 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인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유흥업에 종사할 여종업원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 부족분을 충원하는 방법으로 조폭들이 여성을 납치하고 인신매매를 했다. 그러다보니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가 상당했다. 그러면서 민심이 흉흉해졌고, 이에 노태우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인신매매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것이다.엉뚱한 사람들이 붙잡히기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1년 동안 2백여개 조직에서 7백여명이 구속됐다. 이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적’을 내세우면서 조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붙잡힌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에는 고문수사 및 진술강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조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폭이라고 진술을 해야 했다. 예컨대 이춘재 연쇄살인의 경우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남성들은 경찰에 끌려가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8차 사건은 경찰이 부실조사 끝에 윤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해야 했다. 아울러 이때 잡힌 조폭 상당수가 2000년대 초반에 풀려나기 때문에 이들이 다시 조폭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었다.치안은 의외의 변수에서 확립
일각에서는 이때 범죄와의 전쟁 선포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치안이 있었겠냐는 평가도 있다. 이때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국가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때 붙잡히지 않은 조폭들도 많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기존의 수익원이 붕괴됐다. 즉, 그동안 조폭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넓혀갔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유흥업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조폭이 붕괴됐다. 이런 이유로 이때부터 주로 엔터테인먼트 혹은 금융업 등 기업형 조폭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 분야에도 대기업, 금융기관, 외국계 자본 등이 들어오면서 체계화됐다. 그러면서 조폭들이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게 됐다. 또 다른 이유는 언론의 자유와 스마트폰의 보급이 조폭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많은 매체가 탄생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이 창간되면서 조폭들의 활동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서 조폭들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조폭들의 활동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SNS에 업로드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조폭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